일본, 미국이 차세대 전투기 F-22 안 팔면 "유로파이터 사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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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준비 중인 일본이 승부수를 던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9일 "일본이 수백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차세대 전투기 후보로 유럽 컨소시엄이 개발한 유로파이터 타이푼 기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무기체계를 주로 써온 일본이 유럽산 무기 구매의 도입을 고려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은 그동안 현존 전투기 중 최고 성능으로 알려진 미국의 F-22 랩터 구매를 추진해 왔지만 미 의회는 F-22의 해외 판매를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유로파이터 검토설을 흘리는 것은 결국 F-22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 유로파이터도 검토=일본은 현재 운용 중인 90대의 낡은 F-4s 전투기와 F-15 200대를 교체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일본 방위성은 250~300대를 도입할 차세대 기종을 6개월 내에 결정할 계획이다.

유로파이터는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함께 개발한 차세대 전투기로 뛰어난 공중전 기능을 갖췄으나 레이더 탐지를 피하는 '스텔스' 기능에선 F-22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외에서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가 72기 구매 계약을 했다. 한국과 싱가포르도 차세대 전투기 후보로 검토한 적이 있다.

◆미 의회에 압력=일본은 그동안 F-22 랩터에 큰 관심을 보여 왔지만 미 의회는 첨단 기종을 해외에 팔면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해외 판매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템플 대학의 군사 전문가 로버트 듀자릭은 "과거 한국이나 싱가포르가 미국 무기를 보다 유리하게 구입하기 위해 '유럽 카드'를 쓴 적이 있다"며 "일본도 결국 F-22 구매를 위한 압력 수단으로 유로파이터 구매설을 흘리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F-22 생산사인 록히드 마틴은 수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NIDS)의 다카하시 스기오(高橋杉雄) 연구원은 "록히드 마틴은 시장 개척을 위해 F-22의 일본 판매를 허가하도록 미 의회에 로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 군비경쟁에도 변수=일본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한국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만약 일본이 F-22를 손에 넣을 경우 한반도 전체는 물론 중국도 공격권 안에 넣게 된다. 설사 일본이 F-22 구매에 실패하더라도 차세대 전투기의 대량 도입이 기정 사실이어서 한국.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항공 군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2월 10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嘉手納) 미군 공군기지에 F-22를 임시 배치했으며, 앞으로 한국.일본 공군과 공동훈련을 할 예정이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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