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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의 코리아 여탁구 세계제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와!』 유순복이 코트에서 펄쩍뛴 것과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일어선 것은 동시. 이내 감격에 겨운 선수·임원들이 한데 어우러져 플로어에 쓰러졌고 그 위로 수도 없는 플래시가 터지며 보도진들이 몰려들어 경기장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돼버렸다.
북측 섭외역을 맡은 1백90cm가까운 거구의 장욱 북한올림픽위원회서기장(53)은 그 큰 팔로 윤상문(윤상문)감독과 이유성(이유성) 코치를 끌어안고 반백을 넘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엉엉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분단46년만의 사상 첫 스포츠 남북단일팀인 코리아여자탁구의 세계제패 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사실 남북단일 코리아팀이 45일간의 한솥밥 살림으로 헤어져 살아온 46년의 골을 어떻게 극복, 남녀모두 세계정상에 가깝다는 전력을 극대화할지는 단순한 탁구인들의 숙제만이 아닌 7천만 남북한 온 겨레의 관심사였다.
그것은 통일의 싹을 엿보고자하는 겨레의 욕구가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리아 여자팀은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나됐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세계선수권 9연패의 신화에 도전하던 중국을 꺾어 단일팀 최대의 경사를 엮어냈다.
그러나 통일이 가능했던 끄트머리는 어디까지였을까. 우승직후 인터뷰에서 남측의 한기자가 유순복에게 『누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겠느냐』고 물었다.
9남매의 막내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유순복이었기에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니』정도를 대답으로 기대했던 터였다.
그러나 느닷없이 인터뷰를 가로막고 나선 북측 공보담당은 「위대한 김일성수령동지」이외의 대답을 유도하는 불순의도가 깔린 질문이라고 소리치며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일순간에 살벌하게 바꿔버렸다.
정치적 사안이라고 판단이 서면 강경자세로 돌변하는 북측임원들 태도의 한사례였다.
지난달24일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제2회 월드팀컵 여자준결승에선 『다시는 헤어져 싸우지 말자』고 눈물로 약속했던 현정화(현정화)와 이분희의 숙명적 한판승부가 펼쳐졌다.
결과는 현정화가 이긴 남측의 승리였지만 남북 모두 이 경기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치 않고 따뜻한 악수를 교환한채 헤어졌다.
적어도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 한 코리아탁구팀이 지바에서 이룬 녹색테이블의 작은 통일은 이제 스포츠에서 과거와 같은 사생결단의 남북대결구조를 지워버린 것이다.<유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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