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여성과 사는 한국남편의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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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이 백인 여성을 보면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하얀 피부에 늘씬한 몸매와 금발 …. 한번쯤 연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

최근 들어 백인 여성을 아내로 맞아 살고 있는 한국 남성이 부쩍 늘었다.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띌 정도다. 한국의 물질적 풍요를 선망하는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백인 여성과 백설공주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는 한국 남성과의 결혼은 장밋빛 축복일까. 아니면 깨지기 쉬운 유리컵 같은 것일까?

각각 결혼생활 5년차. 2년차. 그리고 6개월째인 세 쌍의 커플을 서울 광희동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부하라에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장가가려고 무슬림 돼
박희태(45·목수)씨와 박무니라(25)씨는 결혼 5년차 부부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치원 교사이던 야드가루하 무니라씨를 만난 박희태씨는 첫눈에 필이 꽂혔다. 신부로 맞이해야겠다는 욕심에 나이까지 속이고 적극 대시. 결혼에 성공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니라씨와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도 무슬림이 되었다. 어떻게든 결혼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 택한 전술 차원의 신앙이었는지 결혼 후엔 한번도 이슬람 사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질투하지 마세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무니라씨는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이 의처증 비슷한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사실 이 말처럼 국제결혼의 문제점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말도 없다. 한국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의 나이차는 대부분 20년 이상이 보통이다. 이런 경우엔 문화 차이에 앞서 세대 차이가 부부간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슬림 여자는 가사가 더 좋아
결혼 2년차 김노라(26)씨는 남편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쑥스러워해 딸(지수)만 데리고 참석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 노라씨는 “무슬림 여자는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원한다”라고 대답한다. 백인 여성이 아니라 1960년대 한국 아낙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인터뷰 중에도 딸의 움직임에 한껏 신경을 쓰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노라씨의 가장 큰 관심사는 딸의 교육 문제다.

■처가 방문했을 때 외가 온 듯
결혼 6개월째인 새내기 부부 남종우(41·롯데호텔 면세점 근무)-남굴루러(25)씨의 하루는 한국의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깨가 쏟아진다. 남편이 피곤해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굴루러씨. 그리고 아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의 남씨. 서로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두 사람에게 언어의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무슬림 문화가 유교 문화와 흡사하여 마음에 들었다는 남씨는 신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시골 외가에 간 듯 푸근했단다.

■부부 문제에 대한 해답은 결국 사랑
일견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세 커플이지만 그들만의 말 못할 사정이 어찌 없으랴. 이들은 언어 문제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박 이리나씨의 통역으로 처음으로 부인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남씨는 ‘아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는 표정이었다.

결혼 5년차인 박무니라씨도 일상 대화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내면의 깊은 생각을 말하기 위해선 통역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남씨에게 박희태씨가 매우 적절한 충고를 던졌다. “부부간엔 부부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언어·문화·인종. 그리고 나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부 문제에 대한 해답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결국 사랑이 아닐까.

이 기사 관련 TV 프로그램인 중앙방송 Q채널의 <천일야화> ‘백인 여성과의 만남’ 편이 19일 오후 11시에 방영됩니다.

일간스포츠 김형빈 기자 [rjaejr@ ilgan.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01@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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