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하면 된다'를 몸으로 일깨워준 이봉주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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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마라토너는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달리기로 보여 줄 뿐이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이 명제를 증명해 냈다. 다들 '한물갔다'고 했지만 결승 테이프를 끊은 것은 서른일곱 살 이봉주였다.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장하지만 생애 35번째 완주를 하며 2시간8분대의 정상급 기록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강철 같은 의지와 불굴의 정신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렇게 달려온 17년이었다. 영광도 있었고 좌절도 겪었다. 2001년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이 됐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14위에 그쳤다. 은퇴설이 솔솔 나왔고 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이봉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갈 길을 가면 그만이었고 그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마라톤이었다. 특유의 성실성으로 하루 30㎞의 훈련을 단 한번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의지와 노력이 2시간6분대 기록을 가진 세계 최정상급 철각들을 따돌리고 역전 우승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다.

이봉주의 승리는 일이 안 풀리면 남의 탓만 하거나 쉽게 포기하고 좌절해 버리는 요즘 세태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의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청량한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청년실업에 고통받고 있는 젊은 층이나 '삼팔선' '사오정'이란 우스개가 현실로 다가오는 30, 40대에게 귀감이 될 듯하다. 누구나 각 분야의 스타가 되길 꿈꾸지만 화려하게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혜성(彗星)이 돼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역량을 꾸준히 일구고 가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항성(恒星)이 돼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