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10. 그래도 지구는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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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투에 지고 전쟁에는 이긴다'는 말이 있다. 파스퇴르유업이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은가 싶다. Y협회가 제소한 사안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정에서 우리 회사는 졌다.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한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기사 게재 권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나는 곳곳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파스퇴르우유의 매출은 나도 놀랄 정도로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전투에서는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지만 전쟁에서는 이기고 있었던 것이다.

공정위 판정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Y협회는 1988년 1월 15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파스퇴르유업을 공정위에 제소했다. 파스퇴르우유의 내용 표시 및 광고 문구가 '허위.과장.비방'이라는 게 제소 이유였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6개월간의 심의 끝에 7월 13일 판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심의 과정에서 Y협회.파스퇴르유업이 각각 제출한 자료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유전공학센터.보건사회부.국립보건원 등에서 실시한 파스퇴르우유 성분 분석 결과를 종합 검토해 마침내 파스퇴르유업의 부도덕적 상행위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나는 공정위의 판정에 반발해 재심 청구와 제소로 대응했다. 이에 앞서 나는 공정위 심의 마지막날 위원들 앞에서 공정위 판정에 대한 불복 의사를 분명히 밝혔었다. 왜냐하면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기분석법을 사용해야 하는데도 공정위는 무기분석법을 써 칼슘의 총량만 측정했을 뿐 칼슘의 인체 흡수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와의 싸움도 버겁던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88년 6월 11일자 사회면에 파스퇴르우유를 비방하는 기사를 머리기사로 실었다. "최근 유업계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판로를 넓혀가고 있는 파스퇴르우유라는 것은 기존 우유보다 질이 좋다는 아무 근거도 없으며, 오직 비싼 것이 좋다는 잘못된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상술일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허위 과장기사'로 언론중재위에 중재를 신청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이후 6개월간 파스퇴르우유 비판 기사를 15건이나 게재했다.

언론중재위는 중앙일보에 정정기사를 싣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공정위의 판정을 근거로 파스퇴르를 공격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나는 이 문제를 법의 심판에 맡기기로 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말렸다. "대신문사와 다퉈 이기는 기업을 본 일이 없다. 화해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파스퇴르가 곧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굽힐 줄 모르는 내 성격 때문에 꺾이고 말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한마디로 대꾸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이 항복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그런데 당시 중앙일보 보도는 우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보여주는 일례였다. 이후 중앙일보는 파스퇴르우유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유지했다. 물론 기사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됐다. 내가 중앙일보에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인연이 있다. 나와의 유쾌하지 못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싣도록 결정한 중앙일보의 포용력에도 감사한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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