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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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냉전이 끝난 요즘도 소련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소련군기지에는 각종 첨단병기들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본 프리랜스 사진작가 야마모토 고이치(48) 씨가 지난달 21일부터 약 20일간 외국기자로서는 최초로 극동 소련군 전초기지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기지를 카메라에 담고 돌아왔다.
금년 3월 「외국인출입금지」 조치가 해제되기 전까지만 해도 캄차카는 사진촬영은 커녕 근접조차 힘든 곳이었다.
야마모토씨는 불어오는 개방 바람에 조금 열린 문틈으로 캄차카 취재를 위해 소련 라디오·텔리비전 위원회에 협조를 요청, 허락을 받았으나 사진촬영에 필요한 군의 협조는 얻지 못했다.
야마모토씨는 독자적으로 잠입, 현지촬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1일 오전11시20분쯤 아바차만 주변 언덕을 산책하던 중 5㎞정도 떨어진 해상에 태양 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물체가 떠올랐습니다. 황급히 6백mm렌즈에 1.4배 짜리 텔리컨버터를 부착,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랫동안 촬영을 갈망했던 델타W형 핵미사일잠수함을 잡은 거죠.』 현지 라디오·텔리비전위원회 관계자는 핵미사일잠수함이 밤에만 출현하므로 사진촬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그 날은 어찌된 영문인지 밝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원거리에서나마 촬영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야마모토씨는 또 어선을 한 척 빌려 낚시꾼으로 가장한 채 해군기지 근처에도 접근, 정박중인 나누추카I형 대형미사일함정, 레이다, 그리고 수범들의 모습도 근접 촬영했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공군기지 촬영은 극적으로 이뤄졌다.
귀국하는 날 비행기 안에서 창문을 통해 공군기지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캄차카에는 민간기의 이·착륙이 극히 적어 가끔 드나드는 민간기도 이곳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함께 사용한다. 다만 군사기밀상 이·착륙은 주로 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야마모토씨가 탄 비행기는 밤에 이륙할 예정이 지연돼 다음날 오전10시로 출발이 미뤄졌다.
눈 덮인 코리야그스카야산 아래 훤하게 펼쳐진 공군기지의 모습은 야마모토씨의 손을 자동적으로 셔터로 향하게 했다.
지난 83년 KAL기 격추사건의 주범 수호이기가 출범한 바로 그 활주로 위를 최신형 미그31기가 막 이륙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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