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상화가 의미 있으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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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의 잇단 날치기통과로 나흘째 공전되던 국회가 여야합의로 정상화된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투치르듯 변칙을 강행했던 민자당이 하루만에 국민에게 사과성명을 내고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한다니 그 얕고 천박한 정치기교에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뚜렷한 확신과 심사숙고 없이 일부터 저질러놓고 비난여론이 일면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는 집권당의 모습은 동정에 앞서 꼴불견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여당이 진실로 의회주의를 무시한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의 여론을 존중할지는 아직 좀더 두고 보아야 알 것이다.
일시적 후퇴가 국민여론 악화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벌기 전략인지,아니면 정국운영의 시각교정 결과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자당이 무더기 날치기 처리로 범한 오류를 시인·교정할 것으로 보고 금후 국회운영에서 그 잘못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민자당은 날치기 법안들이 안고 있는 심의부실과 토론부재를 지금부터라도 보완해 통과 자체보다 과정을 중시해 주길 바란다. 예를 들어 바르게 살기운동 육성법안 같은 것은 통과절차에 흠집이 생기면 법안 자체의 효력이 반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바르게 살기운동이야말로 전 국민이 공감한 바탕에서 그 정통성과 도덕성이 한정되어야 법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법을 날치기통과시켜 과거 사회정화위같은 조직에 국민세금을 나눠준다면 달가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부·여당이 내년의 4대선거를 앞두고 이 조직을 선거조직으로 활용할 의도가 없다면 굳이 공감대 조성을 생략한채 통과를 강행할 이유가 없으리라 본다. 때문에 이런 법안들은 앞으로 본회의 통과에 앞서 좀더 진지한 토론과정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제주개발법·유선방송법 등도 명백히 반대하는 이해당사자가 있고,엄청난 이권의 오해소지가 있는 만큼 보다 더 신중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믿는다.
다만 추곡수매가 동의안 같은 것은 당장 집행을 요하는 사안이므로 여야의 의견이 도저히 접근되지 않으면 토론을 거쳐 다수결 처리가 불가피하리라 본다. 농민의 표를 의식,야당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면 묵살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마저도 양측의 주장이 충분히 개진될 기회를 갖는 것이 합당하다.
이번 날치기 파동에서 경험했듯이 이제 정당이기주의를 앞세워 현장모면식 국회운영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당은 일정몫의 욕을 먹고 야당은 선전·선동의 반대급부를 얻으면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그러나 여야정치인들의 이같은 악습을 고치는데는 무엇보다 국민의 각성과 냉철한 투표행위가 중요하다. 날치기 활극정도는 며칠만에 잊어버리고 막상 표를 찍을때는 전비와는 무관하게 지연·혈연·학연에 좌우된다면 날치기는 계속 의회용어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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