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542)-서울야화(9)-지도자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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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좌익은 장안파니, 무엇이니 하는 내부싸움 끝에 드디어 박헌영이 헤게모니를 잡고 우익과 대항하는 싸움을 시작했다.
그 싸움하는 방법이 악랄하고 무자비해 사상 앞에는 가정도,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반동이라고 딱지를 붙이면 아비·어미도 잡아놓고 형제·친척도 몰랐다.
툭하면 파업을 일으키고, 심지어 가짜 지폐까지 만들어내니 그 흉악하고 무궤도한 행동은 이루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들과 상대할 수 없어 남쪽만의 정부를 세운 것인데 이런 좌익패들과 함께 살게 되니 자연히 그들과 같이 성질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성립되던 해 10월에 제주도에서 좌익패들의 반란이 일어나 양민을 수천명씩 막 학살했다.
이어 여수와 순천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한때 인민공화국을 만들었으며 반동이라고 해서 무고한 백성을 수천명씩 칼로 찌르고 목을 베어 참살하였다.
이것이 점점 더해 1950년 6월 북괴군이 대거 남침, 남북전쟁을 개시하였다.
이에 앞서 남한에서는 해방직후 민족진영의 거물이던 송진우가 암살되었고 1947년 7월에는 여운형이 혜화동 네거리에서 피살됐다. 그해 12월 한민당 정치부장이던 장덕수가 자택에서 암살되었다.
대한민국이 성립된뒤 1년만인 1949년 6월 김구가 경교장에서 암살되었다. 이리하여 송진우·여운형·장덕수·김구등 네사람이 원인도 모르게 암살되어 국민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차례차례로 흉탄에 쓰러진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슬픔을 안고 있었다.
송진우로 말하면 일찍이 최린·최남선과 함께 3·1독립운동을 계획하였고, 출옥후에는 동아일보사장으로 해방될 때까지 20여년을 총독정치의 반대편에 서서 민족운동을 지도하여왔다.
해방직전에 총독부는 조선에 거류하는 일본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묵계 아래 행정권을 맡으라고 누차 교섭하여 왔으나 송진우는 이것을 거절하고 여운형이 대신 맡았다. 그는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가 귀국하는 것을 기다려 그 정부를 받들어 새 나라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 준비작업으로 한국민주당을 결성해 수석총무가 됐고 이승만이 귀국하자 그를 정상으로 하여 민족진영측의 대동단결을 꾀해왔었는데 해방되던 해 섣달그믐 새벽 원서동 자택에서 괴한에게 저격당했다.
그는 녹록지 않은 굳은 의지와 종횡의 지략을 갖고 있어 천성의 정치가였다. 그가 오래 살았더라면 나라 형편이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이승만이 귀국하자 이화장에 숙소를 정하게 하고 비서를 추천하여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는등 높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여운형은 외교관 타입의 정치가로 다난한 해방초의 정국을 능란하게 타개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었었는데 좌익측의 조종에서 벗어나 좌우합작을 꾀하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저격당했다. 3·1 독립운동당시 상해임시정부의 대표자격으로 일본정부에 초빙되어 동경외신 기자구락부 외신기자들 앞에서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일장의 웅변을 토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또 해방되던 이튿날인 8월16일엔 휘문학교 운동장에서 해방의 기쁨과 건국이상을 이야기한 연설은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하지중장도 그를 좋아해 그와 함께 신국가 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왔다고 하는데 중도에 뜻을 펴지 못하고 변사한 것은 국가를 위해 애석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덕수는 동아일보 창간때부터 주필로 건필을 휘둘렀고 영국에 유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돌아와 학교 교수로 있다 해방을 맞았는데 한민당 정치부장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개최를 전후한 민족주의 진영의 대표적 활동가였다. 유엔에서 한국에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여 남한만의 독립이 실현되려는 순간 현직 경찰관이 자택 현관에서 그를 사살했다.
위에 말한 세 사람의 암살에 대해 범인들은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일절 말하지 않았으므로 좌우 어느 쪽에서 죽였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고, 여러 가지 구구한 억측만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암살된 세 사람 다 그 당시 얻기 어려운 일방의 거물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이 살아서 뜻을 펼쳤다면 정국의 전개가 현재와 달라졌으리라는 것은 우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끝으로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듬해인 1949년 6월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가 군인의 총에 의해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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