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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도, 반전도 없다 '피의 전설'이 있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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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임전무퇴(臨戰無退)라 했다. 전사들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명예로 여긴다. 영화 '300'의 사나이들이 그렇다. 오늘의 굴욕보다 내일의 영광을,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의 존망을 앞세운다.

일면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지 말자. 그것도 기원전 480년의 스파르타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절벽에 떨어뜨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을 체화했던 스파르타 말이다.

'300'(감독 잭 스나이더)은 만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대가 프랭크 밀러의 동명 원작을 스크린에 옮겼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제러드 버틀러)가 이끄는 최정예 전사 300명이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의 100만 대군에 맞서 옥쇄(玉碎)했다는 얘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국가 수호라는 대의를 향해 달려가는 전사들의 무용담이 펼쳐진다.

영화는 여기까지다.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복선도, 반전도 없다. 국가.명예.의무.영광 같은 거창한 단어만 반복된다. 감독은 대신 스타일에 승부를 건다. 프랭크 밀러의 대표작 '씬 시티'(2005년 영화화)와 비교된다. 영화 '씬 시티'가 원작을 장면 장면 복사했다면 '300'은 원작에 새콤달콤 양념을 쳤다.

특히 '붉은 피'를 부각시켰다. 팔이 뚝뚝 잘려 나가고, 머리가 댕강 날아가는 건 기본이다. 웬만한 전쟁영화는 '나 살려라'하고 도망칠 것 같다. 유혈 장면 곳곳을 '슬로 모션'과 '클로즈 업'으로 처리, 전투의 긴박성을 배가했다. '잔혹 취미'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다만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화면정리로 충격은 덜한 편이다. 원작에선 눈에 띄지 않는 왕비 고르고(레나 헤디)의 비중을 키운 것도 대중을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성.자유의 스파르타와 야만.폭력의 페르시아를 대비한 것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소위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다. 뉴욕 타임스는 '300'과 관련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시각에 따라 부시 대통령이 레오니다스와 크세르크세스가 될 수 있다는 것. 감독은 당연 정치적 해석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논란이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역시 관객의 것? 14일 개봉. 청소년(만 18세 미만) 관람 불가.

*** 주목! 이 장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은 접어 두자. 고르고 왕비는 남편 레오니다스보다 더 강인하다. 남편이 전장에 나간 사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스파르타 의원을 칼로 응징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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