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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거부­국제사찰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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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겉으론 기존입장 속으론 진로고심/북한의 고민은 무엇인가/공식논평 않고 신문통해 소극적 반응/대미관계 협상용으로 핵 활용할 속셈
노태우대통령의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11·8선언」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9일 당기관지인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첫 반응을 나타냈다.
예상대로 노대통령의 제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미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에 들여온 핵병기들을 빼내라』고 촉구하면서 아울러 주한미군철수도 요구했다.
북한체제 속성상 로동신문에 실린 내용은 하나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일단 비중이 실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적인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체중」이 실린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보도내용이 노대통령의 선언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판을 제기하지않고 기존입장을 반복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평양 4차고위급회담 당시 연형묵총리의 기조발언을 통해 제시된바 있다.
특히 북한은 그당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을 제시하면서도 「미묘한」움직임을 보였었다.
즉 불가침이나 교류·협력문제에 앞서 비핵지대화를 먼저 들고나와 한때 회담전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었으나 그후 여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북측의 안병수 대변인은 『핵문제는 「불가침 및 교류협력선언」과는 별개사항』이라는 식으로 언급했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때 북한이 4차회담때 비핵지대화안을 제시한 것이나 이번 로동신문 반응에 대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즉 부시의 핵철수선언에 따라 남측이 핵에 대한 모종의 제의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이에 쐐기를 박아보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회담의 전반적인 진행에는 영향을 미치지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의중을 살짝 내비쳐보였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이번 반응이 「체중」이 실리지 않았다고 보는 또다른 측면은 대응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외교부등주로 공식적인 당국의 성명을 통해 밝혀왔으나 이번에는 이보다 격이 낮은 신문사설로 대응한 점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앞으로 상당기간 이번 로동신문 사설에서 밝힌 선에서 여러가지 대응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선 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북한입장에서 보면 「외교적 성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끈질긴 요구가 이번에 상당한 수준에서 관철됐다고 선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체제유지상 기존정책을 일거에 수정할 수도 없는데다 핵문제는 대미관계 개선의 카드라는 효용성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북한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의 대북수교조건이 강화되고,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신중하게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앞으로 겉으로는 기존입장을 고수하는 선에서 입장을 표명하되 내막적으로는 여러카드를 심사숙고하리라고 보여진다.<안희창기자>
◎속임수쓴 핵개발 강제사찰 급진전/국제적 조치강구 내용/유엔·IAEA 핵 이전등록등 구체화/북한·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대상에
핵안전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적 논의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유엔 제1위원회(안보·군축위)는 군축에 관한 결의안을 통해 핵무기감축과 핵안전문제를 제기하는 한편,내년 유엔총회에서 논의될 의제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특별강제사찰을 포함한 핵안전협정의 강화를 유엔에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당장 북한의 핵사찰 거부보다는 걸프전후 유엔의 조사결과 이라크가 국제핵확산조약 금지국으로서 국제사회를 속이고 예상보다 폭넓은 핵무기 개발계획을 진행시켜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활발해지고 있다.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움직임은 앞으로 이라크같은 속임수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합의한 새로운 규칙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했으면서도 안전협정서명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영국·브라질·우루과이 등에 의해 유엔에 제출된 50여개에 이르는 결의안 초안들은 내용이 일부중복되거나 표현이 다르지만 ▲포괄적인 핵무기실험금지와 ▲핵무기 동결 ▲핵무기 이전의 사전등록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핵무기 실험금지나 동결은 과거 여러번 제기되었던 것이나 핵무기의 이전등록제는 핵무기보유를 희망하는 국가들에 기술보유국들의 협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주목되는 것이다.
또 일부 국가들은 핵확산금지조약 서명과 관계없이 유엔안보리가 국제원자력기구에 강제사찰권을 주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원자력기구가 유엔에 제시한 국제핵무기 확산금지 방안은 훨씬 구체적이다.
한스 블랙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국장이 앞으로 이라크 경우와 같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속임수 재발방지를 위해 건의한 내용은 ▲미국등 다른나라 정보기관들이 조약서명 국가들의 속임수 발견시 국제원자력기구에의 통보 ▲이 경우 국제사찰대상인 핵시설도 선언된 곳이 아닐지라도 의심되는 지역에 대한 강제 사찰 시행 ▲관계국이 이같은 핵사찰을 거부할 경우 유엔안보리의 조치 건의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또 위험한 핵물질의 국가간 이동을 추적할 수 있도록 국제적 핵판매등록제를 희망했다.
이같은 입장은 오는 12월 제네바서 열릴 국제원자력기구 집행이사회에서 논의되어 채택될 것이 거의 확실하며 유엔에서도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단지 유엔에서는 핵물질 이전등록제와 관련,핵기술 및 재료보유국간,혹은 핵기술보유국과 비보유국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먼저정리될 것이 요구된다.
핵무기사찰과 관련해서도 다른나라에 대한 핵사찰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의 비밀핵무기시설은 보호하길 원하는 미국 등의 모순된 입장도 해결되어야 할 사항이다.
국제원자력기구와 유엔이 강제사찰조치를 채택할 경우 강제사찰의 적용대상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고서도 사찰을 수용하는 핵안전협정에 서명치 않은 북한과 ▲핵확산조치조약에 가입치 않고 있으나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보유단계에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4개국이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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