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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당신의 삶도 명품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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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김난도 지음, 미래의 창

264쪽, 1만1000원

당신이 사치스러운 소비자라고 가정해 보자. 호텔이나 전문숍만 드나들며 주로 현금만 쓴다면 '과시형 소비자'다. 만약, 판매원이 옆에서 계속 설명해주기를 기대한다면? 커피 대접도 받고, "사장님" 혹은 "사모님" 소리를 들으면서 쇼핑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질시형 소비자'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선호하면 과시형이고, 널리 알려진 브랜드를 좋아하면 질시형이다.

질시형 소비자에게 사치품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주는 '갑옷' 역할을 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요술 지팡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면 또 다른 유형의 사치스런 소비자가 된다. 바로 '환상형 소비자'다. 예컨대 평범한 주부가 상류층 귀부인으로 변신한 것과 같은 환상 말이다. '동조형 소비자'도 있다. 유행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하는 부류다.

이 책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사치 행태를 학문적(소비자학)으로 분석했다. '소비자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남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서울대 소비자학 교수가 명품 소비성향이 높은 소비자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사치스러운 소비자의 네 가지 유형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각종 이론을 접목시켰다. '베블렌 효과'가 한 예다. 통상 상품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떤 상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더 많은 수요가 발생한다. 비싸고 귀한 사치품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이 발견한 현상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소비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여기에도 중독과 관련된 이론 하나를 소개했다. 프랑스 수필가 디드로는 새로 산 예쁜 실내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상에 늘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책상을 교체했다. 다시 보니 벽걸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자.선반도 그랬다. 하나씩 교체하더니 결국에는 서재 전체를 바꿔버렸다. 이게 '디드로 효과'다.

저자는 또 우리나라가 사치의 나라가 된 데에는 대중매체와 정부 탓이 크다고 했다. 대중매체는 사치를 조장하고, 정부는 소비자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유통회사들의 VIP 마케팅으로 인해 중산층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들이 내는 수업료가 너무 크다"면서. 책 말미에 미국의 현대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여기에 나오는 문구를 전하기도 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통제불가능한 소비욕망을 나타낸 말이다. 지은이는 "합리적인 소비로 인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명품"이라고 역설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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