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콘텐트만 좋으면 올드미디어 얼마든지 생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계 최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그룹인 미국 타임워너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8일 오전 본사의 회장 집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파슨스 회장은 번창하는 한국의 온라인 산업을 보기 위해 방한했다고 말했다. [사진 = 박종근 기자]

리처드 파슨스(59) 타임워너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담은 8일 오전 1시간가량 진행됐다. 장소는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사 회장 집무실이었다. 파슨스 회장은 홍콩에서 타임워너 국제리더십회의를 주재하고 전날 입국했다. 이날 저녁엔 서울 정동 주한 미국대사 관저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가 주최한 환영 리셉션에 참석했다. 9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한 뒤 출국한다.

홍석현 회장=한국에 처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터넷 보급률 1, 2위를 다투는 디지털 강국입니다. 초고속 통신망이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돼 있습니다. 인터넷과 디지털은 기존의 미디어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 시장에서도 포털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파슨스 회장=한국 가정의 90%가 초고속 통신망을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가정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포털의 파워는 더욱 커질 것으로 봅니다. 사실 이번에 방한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 온라인 산업의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홍 회장=학창 시절 시사주간지 '타임'을 들고다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룹 이름에 지금도 타임이 맨 앞에 있는 것은 브랜드 전략의 일환인가요.

파슨스 회장=정확한 지적입니다. 타임은 우리 그룹의 핵심 브랜드입니다. 타임과 CNN방송은 타임워너의 심장과 영혼(heart and soul)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홍 회장=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미디어 업계에 큰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과거에 막강했던 매체들이 하루아침에 간판을 내리거나 뉴미디어에 인수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반드시 대체(代替) 관계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두 분야는 상호 보완적인 측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타임워너에는 다수의 미디어 자회사가 있는데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파슨스 회장=저도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쓸모없게 만든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문과 잡지, 영화와 케이블 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브랜드를 온라인 세계로 옮겨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발행하는 인기 잡지 '피플'을 예로 들어볼까요. 피플의 인터넷 사이트인 피플닷컴의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콘텐트는 물론 피플 잡지에서 가져오지요. 독자들은 여기서 또 다른 성격의 정보와 상호 의사소통을 원합니다.

홍 회장=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쇄매체보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것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신문이 언제까지 '리딩 미디어(leading media)'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요. 또 21세기 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파슨스 회장=신문, 잡지처럼 잉크와 종이를 사용하는 전통산업은 앞으로 오래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적어도 내 생전에 신문, 잡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아들도 뉴욕 타임스 홈페이지에도 들어가지만 구글 뉴스도 보더군요. 다만 신문이 여론을 형성하는 영향력은 조금 줄어들 수도 있겠지요. 인터넷과 디지털 매체가 등장해도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 매체의 고유한 기능은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와 같이 근무하는 한 동료는 신문과 잡지가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이유로 '3B'를 꼽더군요. 화장실(bathroom), 침실(bedroom), 그리고 해변(beach)이라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읽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 한 신문, 잡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생각합니다.

홍 회장=TV 얘기를 좀 해볼까요. 일부 미디어 전문가는 TV가 위기라고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몽' 같은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고 미국에서도 '웨스트 윙'이나 '위기의 주부들' 같은 드라마 시청률이 아주 높았습니다.

파슨스 회장=핵심은 역시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라고 봅니다. 콘텐트가 왕이라는 뜻입니다. 내용만 좋으면 영화나 신문, TV 같은 올드미디어가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결국 올드미디어가 하기 나름이라고 봅니다. 올드미디어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확보하고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해 독자나 시청자에게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서면 올드미디어도 21세기에 건재할 수 있습니다.

홍 회장=최근 한국에는 미국처럼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UCC는 기존의 미디어 산업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혁명적인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UCC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파슨스 회장=동감입니다. UCC는 신문이나 라디오 출현에 버금가는 중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UCC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 산업은 디지털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 회장=현재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FTA가 체결돼 미디어 시장이 개방되면 한국의 미디어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파슨스 회장=나는 FTA가 체결되면 두 나라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국경이 사라지면 한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기술 이전 또한 활발해질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의 TV, 영화 같은 미디어 시장은 한층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양국 간 FTA 체결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홍 회장=2002년 귀하가 타임워너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되자 세계의 주요 언론들은 흑인 출신으로는 최초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파슨스 회장=흔히 성공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나(전문지식)'가 10%, '누구를 알고 있나(인맥)'가 10%, 그리고 나머지 80%는 '운'이라 하더라고요. (웃음)

홍 회장=개인적인 질문인데, 와인 애호가라고 들었습니다.

파슨스 회장=이탈리아 토스카나에 포도농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디지털이다 뭐다 해서 복잡한 세상에는 뭔가 구식 일을 하면서 세상과 균형을 취할 필요가 있어서죠. 와인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넬슨 록펠러 부통령에게 배웠습니다(1970년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그는 스탠더드 오일 창업주이자 정치가와 자선사업으로 유명한 존 D 록펠러의 손자다). 와인은 절대로 디지털화될 수 없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홍 회장=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최원기.박현영 기자<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