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⑧ 꽃 가둬 놓고 돈 받는 발상이 기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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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왕'이란 이름을 지어주다

다음날 술에 취해 밤 늦게 돌아온 이강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세숫대야의 물을 다 쏟아버렸다. 몇 마리인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녀석들도 모두 추락했다. 이강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화단 바닥을 한참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뭘 그리 찰관하고 있어요? 아니 관찰… " 이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만에서 만났던 그 친구가 등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여기, 서울에 나타나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만에서 두 번 만났지만 그때보다 훨씬 놀랍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강은 소라게와 관련된 지난 며칠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라게들에게 사랑을 준 거지요. 본래 사랑을 주면 마음이 여려지고 쉬 아프게 된 답니다." 그는 그렇게 이강을 위로해 주었다.

"녀석들을 괜히 그 바닷가에서 데려온 거야. 순전히 내 욕심이었지." 이강이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긴 하지만 녀석들은 당신 가족에게서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아마 평생 받을 사랑보다 더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그들이 쓰고다니던 소라 껍데기는 그동안 받은 사랑으로 언제나 꽉 차 있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았다. 내용과 말투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이렇게 불쑥 자신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 '어린 왕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위로를 받자 이강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줘야지. 그가 사는 곳은 소금 천지라고 했지. 그러니 소금별 왕자, 줄여서 소왕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이강이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더니 그는 아주 좋아했다. "이제 여기서 내 이름은 소왕이라 이거죠?"

우울할 땐 꽃을 봐요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산책에 나섰다. 예전엔 썩은 물이 흘렀지만 지금은 가끔 물고기도 노니는 실개천 옆 둑길을 따라 걸었다. 타박타박 걷던 소금별 왕자가 걸음을 멈추곤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뭐해요?" 뭔가를 응시하고 있던 그는 이강의 말을 흘려 넘기고 쭈그리고 앉았다. 소왕은 길가에서 시들어가는 꽃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이강은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눈 앞에는 스러져가는 가을꽃들이 있었다. 원래는 보라색이었지만 지금은 회색에 가까웠고 꽃잎 가장자리는 너덜거렸다. 화려하던 색깔도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으며, 떨어진 꽃잎들은 여느 쓰레기와 달라보이지 않았다. 이강은 그의 진지함을 방해하며 다시 질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시간을 견디다 어느 날 봉우리를 띄우곤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하지요.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그게 선물인지도 모르죠. 그래도 꽃은 실망하는 법이 없지요.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이렇게 스러져 갈 뿐이죠.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소왕이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강도 따라 걸으며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에게 꽃이 아름답다는 말은 저 산의 돌부리처럼 흔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꽃들은 우리 마을에 더 많지요. 예쁜 꽃도 더 많고요. 그러나 아무리 많고 흔해도 그것은 언제나 환희죠. 마음을 한 번 줘 봐요. 그러면 그것은 당신에게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겁니다." 소왕은 그를 잠깐 쳐다보곤 말을 이어갔다. "우울할 때 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건 꽃들에게서 생명력과 기쁨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건져 올리고 있다는 증명이지요. 이런 가치는 일반적으로 측정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경우엔 꽃의 가치를 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글쎄, 꽃의 가치는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너무나 달라서…" 이강은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여기선 식물원을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곳에서는 꽃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산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컨대 100종류의 꽃과 식물을 갖춰 놓은 식물원이 한 명에 1000원씩, 하루 100명의 손님을 받으면 그 꽃들은 하루에 10만 원어치의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식물원의 꽃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소왕,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이강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식물을 가둬 놓고 돈을 받는 발상이 하도 기이해, 도대체 그 사람들은 꽃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계산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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