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렸지만 순항 미지수/결실없이 막내린 1단계 중동회의/중동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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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상대로 양측 이견만 확인/어렵게 만든자리 “판깨지는 못할것
지난 3일간 계속된 중동평화회의 1단계 전체회의가 당초 예상대로 아무 진전없이 1일 막을 내렸다.
이스라엘과 아랍참가국들이 차례대로 각자의 공식입장을 밝히는 의례적인 성격의 이 전체회의에서 어떤 성과가 기대됐었던건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이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평화회의의 개막회의 성격인 전체회의에서 드러난 이스라엘과 아랍국들간의 극심한 견해차는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과 아랍국간들의 2단계 쌍무협상과 3단계 다자간 지역회의 앞에 가로놓인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은 벌써부터 쌍무협상 장소를 놓고 심각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과의 개별협상을 중동내에서 개최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아랍국들은 협상장소를 마드리드로 고집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아랍국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3일 본격적인 양자간 협상의 막은 일단 올라가게 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3일 마드리드에서 있을 쌍무협상의 개막회의에서는 오로지 협상장소 문제만을 논의해야 한다는게 이스라엘측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2단계 쌍무협상은 회의벽두부터 협상장소라는 사소한 절차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비록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돼 이스라엘과 아랍국간에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결코 순탄한 협상진행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전체회의에서 각국대표가 내놓은 주장과 요구가 일단 협상용이라는 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 주장간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우선 이스라엘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막연설에서 이번 회의의 협상근거라고 분명히 밝힌 유엔결의안 242호와 338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평화와 영토의 교환」을 이스라엘에 게속 요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절멸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게 이스라엘측 주장으로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쌍무협상이 영토문제에 매달리게 될 경우 그것은 회담이 때지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바 있다.
지난 79년 이집트와 했던식으로 이스라엘과 각 아랍국간에 개별·직접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계약적 평화」를 이룩하자는게 이스라엘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나 아랍국들의 접근법은 이스라엘과 완전히 다르다.
아랍국들은 국제법적 질서를 강조하면서 그동안 중동문제와 관련,유엔이 채택한 각종 결의안을 이스라엘이 이행함으로써만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종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가자,골란고원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 각각 반환하고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랍측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체회의에서 확인된 한가지 긍정적인 사실은 이스라엘이든,아랍국들이든 모두 평화를 열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 대표의 기조연설은 예외없이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협상당사국도 43년만에 마련된 평화협상의 판을 섣불리 깨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협상과정에 무수한 장애와 난관이 있더라도 협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앞으로 있을 협상의 두가지 기본원칙으로 안보와 영토적 타협을 제시했다. 현재로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두가지 원칙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이 과연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불안한 출발이긴 하지만 지난 사흘간의 마드리드회의로 평화협상의 막은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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