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전매서장 지낸 한일전기 조립공 고동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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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줄 몰랐어요.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강원도원주시 우산공단내 한일전기공장에서 20∼30대 근로자들과 생산라인에 나란히 앉아 전기모터 몸체에 축을 끼워 넣는 작업을 맵시있게 하고있는 고동욱씨(72·원주시학성1동).
고씨는 한일전기 원주공장에서 근무하는 60세 이상 할아버지·할머니 근로자 46명 중 한 사람이다.
한일전기는 노인문제가 대두되면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가중되자 3년 전부터 60세 이상 노인들을 일용직 근로자로 채용하고 있다.
40년간 전매청에서 근무, 79년 평창전매서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고씨의 지난 10년은 말 그대로 「무료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경로당을 찾아 다른 노인들과 어울려 바둑·장기를 두거나 술 마시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고씨는 경로당에서 우연히 한일전기의 노인채용얘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생산공장에서 전혀 일해본 경험이 없는 고씨는 회사측의 배려로 비교적 단순직에 속하는 모터조립공으로 채용됐다.
고씨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아침9시에 출근, 저녁6시까지 모터와 씨름했다.
젊은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익힌 기술도 1년이 지난 이제는 어엿한 숙련공 수준에 달했다.
고씨는 하루 8천4백원씩 받는 임금이 비록 적은 액수지만 매우 보람 있고 술도 토요일 저녁이 아니면 마시지 않게 돼 건강도 좋아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에게 창피하다』며 취업을 반대했던 아들·며느리도 이젠 출근 준비를 도와주는 등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원주=오장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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