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⑦ 비행기 탄 소라게들의 운명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소라게들이 비행기를 타다

뜻밖의 중동 출장에서 이강은 과외의 소득을 얻었다. 누구도 믿지 않을 소금별 왕자를 만난 것과, 오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배운 새로운 지식이었다. 페트병 속에는 색다른 소득이 들어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강은 틈틈이 병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거기엔 사막의 모래와 사막의 바다와 거기서 잡은 소라게들이 30여 마리 들어있었다. 생물에 그토록 산뜻한 감정을 느껴보기도 드문 일이었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가 크고 무거운 소라 껍데기를 이고 꼼지락거리는 그들의 부지런한 발을 보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이 지루한 줄 몰랐다.

그러나 서울이 가까워지면서 걱정이 생겼다. 외국에서 살아있는 동식물을 반입할 땐 신고해야 한다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여자 승무원이 입국신고서 용지를 나눠주었다. 세관신고서 용지도 딸려왔다. 이강은 이런 것도 신고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입국 카운터를 넘으면서 그는 세관 행정이 정말로 간편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모든 입국절차가 끝났기 때문이다.

-세관원이 나 같은 모범 국민을 잡고 가방을 열어보게 한다는 건 프로로서 식견이 부족하다는 증거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강은 공항건물 밖에 줄지어서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빈 택시 행렬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었다. 서민 경기가 그만큼 풀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집에 도착한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아빠가 신기한 선물을 가져 왔다." 아이들은 빨리 보여 달라고 졸랐다. 페트병을 내놓았다. 역시 첫 반응은 뜨악했다. 모래와 물과 몇 마리 작은 소라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강은 흰 세숫대야를 가져와 병 속에 든 것을 모두 쏟아냈다.

바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움직인다." "이것 봐, 이 작은놈도 기어 다녀." "요렇게 앙증맞은 놈은 처음 봤어." 네 식구는 그날 밤이 이슥하도록 세숫대야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과외의 소득은 또 있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애완견을 키우자는 우리들의 끈질긴 요구를 단호하게 잘랐던 아빠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중2짜리 딸 입에서 동시에 나온 소리였다.

# 고민이 시작되다

다음날부터 이강의 가족에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모두 34마리인 소라게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것이었다. 아들 녀석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뒤졌다. 소라게 키우는 법이 화면 가득히 쏟아졌다. 우선 이들이 살 수 있는 신선한 바닷물이 필요했다. 바다에 가서 퍼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많은 수고가 요구됐다. 그래서 인공 바닷물을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했다. 먼저 수돗물을 받아 하루쯤 둔다. 그럼 다음 세숫대야 하나에 천일염을 한 스푼 정도 넣는다. 바닷물 제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러나 이 물에서 중동에서 온 소라게들이 정말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한 마리만 넣고 움직임을 살피기로 했다. 전에 비하면 수량이 엄청나게 풍부해진 곳에서 녀석은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다음날 '찰관'에서는 활동성이 전날에 비해 무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익숙해 있던 그 물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리라.

다음날 딸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횟집 수조에 있는 바닷물을 사오는 방법이었다. 두 아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버스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횟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주인은 인천에서 배달해 오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아이들은 3000원을 주고 간신히 한 세숫대야 분의 바닷물을 사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물에서도 게들의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횟집 수조엔 산소가 끊임없이 공급되지만 여기선 그렇지 못했던 때문일까. 하루가 더 지나면서 물은 끈적끈적해 지고 있었다. 고여있는 물에 아이들이 먹이로 멸치와 식빵을 잘게 부수어 넣어줬던 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면서 녀석들의 움직임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급기야 다리를 공중으로 들고 벌렁 드러눕는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은 것이다. 일단 죽은 놈들은 끄집어냈다. 빠른 발 놀림은 사라지고 겨우 움직이는 녀석들도 열 마리 정도로 줄어들었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놈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심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