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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시설 건설 잇단 제동사태|「환경과 성장사이」갈등 잦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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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진종합건설은 최근 인천시 신흥동에 콘크리트 공장을 세우려다 현지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인천∼안산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공사를 맡아 이에 필요한 콘크리트를 현장에서 조달하기 위해 지난7월 공장건립 계획을 세웠던 이 회사는 먼지와 소음공해 등을 이유로 현지주민이 점거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여태껏 땀도 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국가기간 시설인 도로건설을 위해 94년까지만 한시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것인데도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고 푸념했다.
각종 개발계획을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의 집단농성, 시위장면은 이제 전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시각차이 깊은 골>
특히 페놀오염 사건이후 부쩍 높아진 환경보호 의식과 「내 집 뒷마당은 안 된다」는 이른바 님비(NIMBY)식 지역 이기주의까지 겹쳐 각종 공장에서 원전, 석유비축기지, 쓰레기 처리장 등 국가기간 시설에 이르기까지 주민반대로 건설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경기도용인 석유비축기지 건설문제만 해도 이 지역이 지난해 상수원 특별대책지역 안에 포함된 당이어서 현재로선 환경처가 「건설불가」조치를 내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에 대해 기지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석유개발공사 양성명 시설부장은 『환경처가 용인에 20여 군데의 골프장을 세울 수 있게 허용해 주고도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설유비축기지에 대해 「불가」입장을 보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종 개발계획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주체가 정부든 민간이든 간에 환경보호라는 대 명분에는 동의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 꼭 해야 할 것은 해야 되지 않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3공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환경 보호론자를 겨냥, 『먹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이것저것 가릴 것 있느냐. 폐유(공해산업)라도 먹어야 한다』고 말하던 식의 성장제일주의는 아니더라도 국민소득 5천 달러 나라가 환경의식만 2만 달러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경제냐 환경이냐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된 경우가 이 달 초 표면화 된 대구 비산 염색단지 수질오염사건.
이 사건은 결국 지난11일 환경처가 이례적으로 3일에 한번씩 공장을 쉬도록 한다는 어정쩡한 부분조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 됐으나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명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경우였다.
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정부부처끼리는 물론 국민이 해당사자들간에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나타내 주기도 했다.
3부제 부분조업 정지라는 환경처의 절충안에 대해서 시민단체나 염색업계·상공부 어느 한곳도 만족하지 못했다.

<「오염기준」논란>
대구 공해추방 운동협의회는 『통상 구속수사까지 할 수 있는 이번 폐수방류에 대해 부분조업정지라는 가벼운 행정처분에 그친 것은 특혜』라고 비난했다. 공단 측은 이에 대해 『조업단축으로 근로자의 20%(2천4백명)감원과 함께 염색업체는 물론 섬유관련 업계의 연쇄도산이 불가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상공부 또한 「현실론」을 들어 현재 공단폐수 기준인 1백PPM은 현실을 무시한 규제기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공부 임내규 섬유원료과장은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환경기준을 고집해 과도한 부담금을 물리거나 조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재원을 염색산업 스스로 마련하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라며 『염색산업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지 못 할 바에야 과도한 환경규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만 지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섬유산업의 중간단계인 염색가공업에 과도한 폐수허용 기준을 적용, 조업이 중단 될 경우섬유산업이 「병목현상」을 일으켜 대구지역 섬유업계는 물론 전국 l천6백20개 직물, 1백60개 봉제업체들의 연쇄도산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국세수지 적자로 연4수째 일요비상근무까지 하고 있는 상공부는 연가 80여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섬유업이 겪게 될 애로를 팔짱만 끼고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입장이다.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막연한 「일반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처럼 환경오염의 기준이나 심각함에 대한 경제부처간의 「현실인식」이 달라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크다.
더구나 지방자치제 실시로 그린벨트해제 압력과 공해산업거부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등 환경문제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커질 깃으로 보인다.

<예방에 중점 둬야>
환경경제 학자들은 이같이 환경과 산업을 둘러싼 갈등이 갑자기 수면위로 분출하는데 대해 그간 국내 환경개선 투자규모가 선진국의 10분의1 정도인 GNP대비 0.2%에 불과했던 점 외에도 사전적 환경개선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단 생성된 오염물질을 처리하는데 중점을 두었을 뿐 환경 파괴적인 기술도입을 억제하고 이른바 「클린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데 업계나 정부모두 소홀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정전 교수는 정부용역 연구보고서에서 62∼80년까지 국내에 도입된 l천7백26건의 기술 중 배출계수나 오염유발계수가 큰 정유, 화학, 금속, 시멘트, 펄프, 제지 등 환경오염 지향적 산업이 33.1%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80∼86년 사이 경제성장률이 64% 증가한데 비해 특정산업폐기물 증가율이 l백%, 일반산업 폐기물이 88% 증가해 환경오염 정도가 경제성장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경제학과 신의순 교수는 『고도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파괴를 필요악으로 여긴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환경보호를 위해 성장률둔화를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의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라고 말했다. <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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