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예산 공개와 효율화(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방장관이 8조4천2백50억원의 국방예산을 최초로 항목별로 공개한 것은 국민정서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조치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차제에 국방부가 무려 1백억달러를 훨씬 넘는 국제수준의 예산을 관리집행함에 있어 「공개」에 못지않게 「효율성」제고에 획기적인 발상전환과 제도개선을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는 가운데 치열한 군비경쟁을 해오면서 국방비의 많은 부분을 비밀에 묻어둔 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군사 정보전에서 유리한 작전을 펼 수 있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냉전체제의 종식,국내의 민주화추세 등은 국방의 개념과 위상변화를 불가피하게 재촉하고 있다. 거의 금기시되던 군축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토론되고 있고,때맞춰 군내부에서까지 국방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비효율적이거나 낭비적인 요소는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국방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됨에 따라 이제 국민의 설득과 지지없는 국방의 비밀주의나 독주는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국방정책이 국민의 인식변화와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방예산에 대한 국민의 새 요구는 무엇으로 함축되는가. 군사적 안목에 문민족 경영기법과 손익개념을 과감하게 접목시킬 것을 으뜸으로 제의하고 싶다.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도 군인은 항상 자기가 가장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방예산을 깎자면 곧잘 비애국적이라고 반격한다.
그러나 국방비뿐 아니라 모든 예산은 필요한대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군의 병력수·복지·봉급의 수준과 장비의 선택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때문에 국방예산에도 경영자적인 식견이 꼭 필요하다.
이를테면 냉전에서 평화공존으로 국제세력 판도가 바뀔 때는 거기에 맞는 국제감각과 투자우선순위 조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북한과의 군사력 균형도 따지고 보면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경쟁이다.
지금 북한은 경제파탄의 위기,외교의 개방압력,정권세습의 부담이란 삼중고로 체제유지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이 내외의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의 사정이 이러하고,또 통일을 위한 장기적 적응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면 남북 관계에서 군비통제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국방부가 이같은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것으로 믿으며,이번 국방예산의 공개도 같은 기조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덧붙여 주문한다면 세부적인 것과 큰 것을 동시에 관찰하는 안목을 강화하기 위해 인사와 정책판단에 보다 문민적 요소를 과감하게 채택할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군은 외형보다 내용면에서 좀 더 국민에게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군 내부의 혁신 못지않게 군의 변화를 국민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