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뛰쳐나간 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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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갇혀 있는 미술은 싫다'고 거리로 나선 미술가들의 작업이 겨울 도시를 훈훈하게 달군다. 공공미술의 형태와 영역을 넓히고자 마음 먹은 작가들의 노력이 도시의 표정을 바꾸고 있다.

지난달 부산 중심가에는 난데없이 오줌을 싸는 인체 조각들을 싣고 달리는 트럭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녹슨 고철 덩어리들로 덕지덕지 기운 듯한 거대한 인간상들이 짐칸에 앉거나 서서 오줌을 누면서 거리를 누볐다. 설치작업을 하는 하용석씨가 제15회 작품전으로 내세운 제목도 모습 그대로 '트럭 타고 오줌누기'다.

하씨는"정해진 전시장은 없습니다. 하도 미술품을 안 보러 오시니 트럭에 작품을 설치하고 시민들을 찾아 나선 겁니다. 뜻이요? 보는 이들 마음대로죠. 세상이 하도 재미 없으니 대리배설이랄까, 시원하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부산역.남포동.해운대.서면 등을 돈 트럭은 3일부터 10일까지 서울로 와 명동.광화문.종로통.대학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행진을 계속한다. 051-311-2088.

경기도 의왕시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도시에 앉는다-벤치 프로젝트'는 계원조형예술대학이 마련한 공공미술 프로그램이다. 시민과 교수와 학생이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쓸모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의자(아트 벤치)를 만들었다. 15일께 설치가 끝날 이 의자들은 밋밋한 새 도시에 풍부한 느낌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의자 주변에 선 최정화씨의 풍차형 시각물은 쉼터가 있다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어슬렁거리는 개 모양을 딴 서정국씨의 의자는 바쁜 걸음을 멈추고 엉덩이를 걸치고 싶게 만든다.

기획을 맡은 민병직씨는 "어느 도시나 비슷비슷한 시각문화환경을 시민들 손으로 직접 개성있게 가꾸자는 제안"이라며 "시민들을 불러모은 '개방형 스튜디오'가 해마다 계속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계원조형예술대는 이를 위해 내년 2월 25일 공공조형물 관련 공개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031-420-174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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