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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카메라, 어디까지 진실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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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대인은 TV 앞에서 세상 일을 경험한다. TV가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사건이다. 카메라는 보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편집적으로 극화한다. 대중은 영상물을 먹고 마시며 집단적으로 복제 생산된다. 오, TV는 우리의 신, 우리의 아버지.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카메라는 방 안에만 있지 않다. 백화점과 거리, 은행과 관공서,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군대, 우리의 간수.

그러나 이제 감시 방식이 바뀌었다. 얼마 전 '개똥녀 사건'을 상기해 보자. 카메라의 권력은 대중의 손으로 넘겨졌다.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 폰, 매체는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이양됐다. 카메라는 폭로와 발각을 넘어 도취의 나르시시즘을 즐긴다. 수많은 블로거가 퍼올리기를 한다. 홈피와 게시판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최근 모 회사는 회사광고용 동영상을 UCC(사용자제작콘텐트) 제작으로 공모하기도 했다. 대중은 예술적 자기 연출의 주체로 등극했다. 셀카와 몰카, 자기 연출의 시대, 1인 매체 시대가 왔다. 바야흐로 우리의 삶은 '연출'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에 난데없이 젊은 남녀 한 쌍이 승객들 앞에서 가난한 결혼식을 올렸다.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퍼져나가자 전국에서 지하철 커플의 결혼을 축하하는 폭발적인 관심이 일어났다. 결혼업체가 이들의 결혼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도시철도공사에서 이들을 찾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수십 명의 독자가 축의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하게 연출된 행동이었다.

한 달 전 UCC 사이트에서는 여학생 성추행 동영상이 올라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TV 9시 뉴스가 이를 보도했고,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도 조작된 연출이었다. 성추행당하던 여학생은 가발을 쓴 남학생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럴 수가. 새로운 기만과 위장이 유희처럼 번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뜨는 동영상과 블로그, TV와 휴대전화 화면.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이미지는 어떻게 조작되고 위장되는가. 카메라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어디를 비추고자 하는가. 카메라는 이면에 숨겨져 있던 은밀한 욕망을 들추어내며 낄낄대다가(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환상의 '뽀샤시 효과'로 '위대한 허구'를 창조해내기도 한다(홈피의 셀카). 연말이면 대기업 임원들은 달동네를 찾아 연탄을 직접 배달하는 장면을 찍는다. 선거철이면 대선 주자들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아 뺨에 뽀뽀하는 장면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다. 사각의 링(카메라 프레임) 위에 올라가면 누구나 연기자가 된다.

날마다 동영상은 장엄한 장면을 전송한다. 관중은 열광한다. 프로레슬링은 더욱 격렬해진다. 피가 튀고 눈두덩이 부어오른다. 카메라는 날마다 관음증적 호기심과 공모해 좀 더 놀라운 볼거리를 장면화한다. 실제의 삶은 저당잡힌 채 우리가 환호하고 있는 저 사각의 프레임은 진짜인가. 우리의 열망을 대리 배설해 주는 스크린은 실제인가. 저 수많은 이미지가 주는 빛의 정보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 오늘도 대선 주자들은 사각의 링 위에 올라가 우리를 향해 웃고만 있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