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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세이지 "Korea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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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나는 이제 막 알기 시작했다. 한국, 한국엔 진정, 진정한 영화의 역사가 있다(Korea, South Korea, the real, real, film history)."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차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에서 온 어느 기자가 필름 영화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난데없이 한국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는 잠시 후 다시 한번 한국을 언급했다.

어쩌면 감독상을 받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코세이지 같은 거장 감독이 아카데미 기자회견이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한국을 두 번씩이나 언급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 그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은 아카데미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2005년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오른 박세종 감독을 제외하면 한국인에게 아카데미는 그저 남의 잔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아카데미 수상작의 공동 제작자 중 두 사람이 한국계였다. 작품.감독.각색.편집상 등 4관왕에 오른 '디파티드'의 로이 리와 단편영화상을 받은 '웨스트 뱅크 스토리'의 김소영씨다.

이들의 성공은 올해 아카데미의 특징인 개방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디파티드'는 홍콩 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라는 점에서 작품상 수상은 이변으로 여겨진다. 올해는 외국인과 흑인도 아카데미상을 많이 가져갔다. "아카데미는 국적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시드 개니스 아카데미 회장)는 말은 결코 공치사가 아니었다.

개방성은 할리우드의 세계 시장 진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충무로가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한국계 제작자들의 성공은 영화적 재능에서 한국이 미국에 별로 뒤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콘텐트의 창의성으로도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에선 영어를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잇따라 러브콜을 받는 것을 보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제작사가 손을 잡고 영어로 합작 영화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주목되는 이유다. 가까운 장래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와 스태프를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정완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