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울림 큰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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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는 게 저희 직업이잖아요. 사랑을 베풀며 행복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죠."

지난 20일 오후 2시 송파구 마천동 송파사물놀이'한얼'팀의 사물놀이 연습실.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꽹과리와 징, 북과 장구 소리가 어우러진 풍물연주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전문가들의 국악 공연을 연상케 하는 능수능란한 소리였다.

하지만 연습실 문을 연 기자를 맞은 것은 10여 명의 주부들과 초등학교 입학 전인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열심히 타악기를 치고, 두드리는 이들은 송파지역 가정어린이집 원장들이 모여 만든 송파구 가정어린이집 연합회 소속 풍물봉사단'좋은 사람들'의 회원들이다.

#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에 행복감

이들은 올 봄 인근 청암요양원 풍물봉사활동을 앞두고 이날도 풍물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걸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죠."

장혜란(52.여.슬아어린이집) 회장의 말이다.

'좋은 사람들'의 창립 멤버는 2003년 중순 송파지역 어린이집 연합회 행사를 위해 삼삼오오 모였던 회원 7명이다.

유일하게 무용을 전공했던 장 회장의 지도로 회원들은 풍물에 대해 눈을 떴고, 그해 10월 송파 유아마라톤 잔치에서 첫 풍물공연을 했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공연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회원들을 기쁘게 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손뼉치며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하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파하고 싶었어요."

이후 회원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5시간여에 걸친 맹연습을 했고, 실력이 늘면서 2004년부터는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장애우체육대회 행사에 나가 장애우들의 신명을 북돋았고, 인근 청암노인요양원과 신아원 등 지체장애재활원을 찾아 정기 봉사활동을 했다.

한성백제문화제 거리행렬, 어린이날 행사, 국제 연날리기 대회 등 송파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저명인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이사하고서도 연습실 찾아

지난해 3월에는 새 학기를 맞아 인근 초등학교 결식아동들을 돕기 위해 회원들이 거리로 나섰다. 송파구 마천역 1번 출구에 자리를 잡고 거리공연을 하며 행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았고, 일일찻집을 열어 400여 만 원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M초등학교 10여 명의 결식아동과 자매결연을 했고, 이들이 졸업 때까지 급식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좋은 사람들'이란 이름을 내건 단체 봉사활동뿐 아니라 풍물봉사단 소속 회원 개개인이 직접 하는 봉사도 늘고 있다.

장선경(37.여.키즈어린이집) 원장은 지난해 초부터 매주 K중 자폐아 특별반 학생들을 찾아 1시간씩 풍물강의를 하고 있다.

장 원장은"평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했던 아이들이 풍물을 배우며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며"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에 행복을 느낀 회원들은 절대 '좋은 사람들' 모임을 떠나지 못한다. 김동미(43.여) 원장은 지난해 도봉구로 어린이집을 이전했지만 매주 토요일이면 연습실을 찾는다. 유방암으로 2차례 대수술을 받은 황은숙(50.여.해오름어린이집) 원장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에 나온다. 몸이 아파 직접 장구를 칠 수는 없지만 연습 때면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봉사활동에도 반드시 참여해 동료의 흥을 북돋운다.

# 난타와 무용 연습에 여념 없어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회원 수는 10명으로 불었고, 참여를 원하는 원장들도 늘고 있다. 또 6~7세 아이들로 구성된'깜찍이 풍물패'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신명나는 풍물공연이 가능해졌다.

누가 봐도 철부지 아이들이지만 풍물복을 입고 장구채를 잡을 때만은'프로 풍물단원'못잖다.

주경리(7) 양은"요양원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손뼉치며 기뻐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미소를 짓는 '좋은 사람들'회원들이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연습 스케줄로 가족들에게 무심한 아내와 엄마가 되기 일쑤다.

주말 부부인 홍향기(47.여.아이들세상) 원장은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이 서울에 올라오는 토요일마다 집을 비우고 연습실을 찾느라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홍 원장은"처음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하지만 이젠 포기했나 봐요. 밥도 알아서 잘 챙겨 먹더라고요"라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이들은 변변한 연습실이 없어 연습실 대여료를 마련하느라 1인당 월 10만 원을 갹출하고 있다.

회원들은"구청에서 연습실이라도 대여해 주면 그 돈을 모아 더 많은 이웃에게 사용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2005년 12월 자원봉사단체로 정식 등록한 회원들은 요즘 더 큰 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지난달엔 회원 9명이 아동·실버 국악자격증을 취득했다. 공연 내용을 다양하게 하기 위해 풍물뿐 아니라 난타공연과 무용연습에도 여념 없다.

장 회장은 "시간과 장소 섭외에 쫓길 때면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만 소외된 이웃들의 미소를 볼 때면 모든 걸 잊어버린다"며"더 많은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계속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아직 아마추어 풍물패이지만'사랑'이란 무기가 있기에 이들의 공연은 그 누구의 공연보다 빛난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bully21@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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