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극 '진시황'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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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최근 방영중인 사극 '진시황(秦始皇)'이 잇따라 시청자들로부터 굴욕을 당하고 있다. 진시황은 중국의 간판 방송국인 중국중앙방송(CCTV)이 3000만위안(약 36억원)을 쏟아부어 6년전에 제작한 60부작 대하사극.

중국의 스타 연기자가 총출동했지만 이 사극은 6년만에야 햇빛을 봤을 정도로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주요 드라마는 황금시간대(오후7~10시)를 배정받지만 '진시황'은 오후 10시30분부터 두 편이 연속 방영되고 있다. 중국 최초의 황제라는 시황제의 이름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푸대접'이다.

두껑이 열리면서 '진시황'은 13억 시청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진시황 역을 맡은 장펑이(張豊毅)에 대해 시청자들은 "진시황의 권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유약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진시황이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하는 전투 장면에 당나귀가 등장한 것도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정적인 장면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극'진시황은' 재상 여불위(呂不韋)와 사통해 진시황을 낳은 것으로 알려진 생모 조희(趙姬)가 환관과 음탕하게 즐기는 장면을 삽입했다. 또 유년시절 진시황의 첫사랑에서부터 조(趙)나라 공주, 초(楚)나라 공주를 차례로 황후로 맞아들이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렸다.

네티즌과 시청자들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위대한 황제인 진시황의 여성 편력이 지나치게 부각됐다"며 "정사(正史)가 아니라 '진시황 비사(秘史)'나 '진시황과 여인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시청자들은 또 "초나라 공주 아뤄(阿若)가 옷을 벗고 목욕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야한 잠자리 장면도 자주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제작자인 옌젠강(閻建鋼)PD는 "사극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여배우가 적게 나오면 보는 사람이 줄어든다"며 "역사 기록을 보더라도 진시황은 일부일처(一夫一妻)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사랑 이야기를 적절히 추가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반박했다.

중국 언론들은 시청자들이 최근 중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여배우인 판빙빙(范氷氷,초나라 공주 역)과 장징추(張靜初,조나라 공주 역)의 6년전 신인 시절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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