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에 대한 응징의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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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 최대폭력조직인 「범서방파」두목 김태촌 피고인에게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은 조직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응징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또 이는 이번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아온 다수 국민의 여론과 감정에도 적절히 부합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이 재판이 유례가 드물게 질질 끌고 피고측이 증인은 물론 검사에 대한 협박마저도 서슴지 않는 것을 지켜보면서 분노를 느껴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법집행당국에 대한 회의와 불신도 키워왔다. 이런 불신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 김피고인은 인천 뉴송도호텔사건으로 확정판결을 받은지 얼마 안돼 형집행 정지결정으로 풀려나 대로를 활보했을뿐 아니라 이번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공소사실대로 전국 유명호텔의 빠찡꼬 지분을 갈취하고 마침내는 흐트러졌던 폭력조직을 재규합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는 재판부가 중형선고 이유로 적시한대로 「법과 형벌을 경시·무시하는 심성」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명명백백하다면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장기화되고 증인이 증언을 번복하는 사태까지 빚어지자 많은 사람들은 과거 이런유의 폭력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사례도 있고 해서 법당국의 의지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사법부는 경찰이 국민의 여론에 따라 모처럼 검거한 폭력조직의 두목급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가볍게 처벌해 풀려나게 해줌으로써 일선 수사관들의 강한 반발과 국민의 불만을 샀던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중형주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범죄자라고 해서 법이 규정한 형벌이상을 부과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회악일 수밖에 없는 조직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여건과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최소한 법의 범위안에서라도 최대한이 엄한 처벌을 해야 함직한데도 많은 경우에 있어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러한 과거의 미온적 대응과는 궤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것이다.
아직 고법과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번 판결만으로도 사법부는 살인등을 저지르지 않은 폭력조직의 두목에 대해서도 중형을 내릴 수 있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는 앞으로 우리사회와 수사당국이 조직폭력에 대응해 나가는데 있어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이미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조직폭력이 어느 개인을 엄하게 단죄한다고 해서 움츠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심리적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조직폭력의 토양이 존재하는한 그것은 변함없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러한 토양이 제거되지 않는한 김피고인에 대한 중형도 우리들의 감정풀이나 법의 엄포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지 모른다.
폭력조직을 생성하고 기르는 토양은 우리의 비대한 지하경제와 부패구조,그리고 이들의 돈과 조직을 표로 연결시켜오고 있는 타락한 선거풍토 및 정치구조에 있다. 이를 캐내지 못한다면 김피고인에 대한 중형도 잡초자르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점을 정부당국은 물론 국민들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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