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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우리 아이 어떤 위인전 읽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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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은 대개 두 종류의 책을 놓고 살까 말까 고민한다. '세계명작'과 '위인전'이다. 특히 '아이의 미래를 위해 위인전집은 꼭 장만하시라'는 광고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근사한 장정의 위인전도 막상 사려면 결정이 쉽지 않다. 대왕 몇몇에 장군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물려받은 전집은 싫은데, 그렇다고 '이런 사람도 위인인가' 싶은 대중적인 현대 인물에게는 손이 잘 안 간다. 가치관이 다원화되면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많고 선뜻 누구를 '위인'이라고 지정하는 것도 염려된다.

그러나 틀에 박힌 전집류에서 눈길을 돌려 서점 구석구석을 돌아 보자. 썩 괜찮은 '인물 이야기'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단 요즘은 출판사마다 '위인전기'라는 명찰을 잘 달지 않는 추세다. 또 과장된 수사보다 인물의 삶에 담담하게 접근하는 서술 방식이 대세다. 어린 시절 불우했지만 남달랐다는 식의 천편일률적 성공담은 지양하는 분위기다.

대신 인물이 살던 시대를 충실히 고증하며 '왜 그가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제3세계 국가의 인물이나 여성 등 소수자의 삶을 주목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백열전구'(제니퍼 팬델 글.그림, 책그릇)는 정직한 역사 접근이 돋보이는 에디슨 이야기다. '달걀을 품은' 일화나 '천재는 99%의 노력' 같은 명구 대신 에디슨 생존 당시 세계를 뒤흔들던 굵직굵직한 사건을 사진과 함께 나란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백열전구'가 어떤 시대적 의미가 있는지, 싼값에 모든 이에게 '불빛'을 주려고 한 에디슨의 노력이 왜 숭고한지 깨닫게 된다.

다윈의 일생을 다룬 '생명의 나무'(피터 시스 글.그림, 주니어김영사)도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고증이 충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법 카드처럼 현란한 그림으로 다윈의 도표.일지와 지도를 풀어 담았다.

위인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통념을 깨는 책도 많다.

'그림 그리는 아이 김홍도'(정하섭 글, 유진희 그림, 보림)는 훈훈한 그림체 때문에 그저 내 주변의 그림 잘 그리는 친구녀석 하나를 만나고 쓱 돌아선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건축가 김수근 이야기'(이민아 지음, 샘터)에서 말하는 건축가의 삶도 특별하지 않다. "건축은 방안의 책상을 돌려놓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속삭인다. 김수근이 지은 건물을 직접 찾아다니며 읽어볼 수 있게 구성됐다.

소수자의 삶을 담은 얘기도 늘어나고 있다. 라틴계 여성 장애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인 '프리다'(조나 윈터 글, 아나 후안 그림, 문학동네어린이)는 강렬한 색감과 형상이 화가의 작품과 빼닮았다.

어떤 인물 이야기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인물이 어제 만난 사람처럼 가깝게 여겨지느냐다. '지구 둘레를 잰 도서관 사서'(캐스린 래스키 글, 케빈 호크스 그림, 미래 M&B)를 보면 '에라토스테네스'라는 2000여 년 전의 천재가 이웃집 형님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겸손하고 정교한 재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어떻게 실험하는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얀 발케르 글, 샬럿 보크 그림, 비룡소)는 음반이 함께 제작돼 읽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모차르트의 삶을 문자로만 읽을 때와 감동의 접촉면이 다르다.

권위 있는 어투로 성공 비결을 늘어놓는 위인전기는 어린이를 주눅들게 만든다. 또 순간적 명성에 기대어 마구잡이로 발간되는 유행성 인물 이야기는 '위대함'의 깊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위인이라고 알려져 다투어 펴냈다가 다시 거둬들이는 책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

'정직할 것, 더 충실할 것'. 이것이 어린이에게 권하는 인물 이야기의 첫째 가는 미덕 아닐까.

김지은(동화작가) ,

인물 이야기 잘 골라 읽히는 법

■흥분된 목소리의 영웅담은 피하세요=위인전은 신화가 아닙니다. 인물의 생애를 신비롭게 채색하거나 업적을 과대 포장한 책은 경계하세요.

■사실 정보의 품질을 따져보세요=인물 이야기는 논픽션입니다. 사실 정보의 질이 이야기의 질을 좌우합니다. 첨부 자료가 정확하고 풍부할수록 그 인물의 삶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남녀와 다양한 직업군을 골고루 보여 주세요=위인전 독서가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숭배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접하는 인물의 성별.인종과 직업이 다양할수록 인간을 보는 눈도 넓어집니다.

■한 인물에 대한 여러 각도의 접근을 시도해 보세요=관점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한 인물에 대해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 분석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드러난 책, 예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책을 골라 주세요=출생. 사망 연보는 백과사전에 다 있습니다. 시대의 갈등과 인물의 고뇌가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책을 읽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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