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이 당한 잔혹한 인체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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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의대의 윤리학 분야 연구원이기도 했던 해리엇 워싱턴은 미국 흑인 대상의 의료범죄를 연구하기로 결심하면서 터스키기 실험보다 더 많은 일이 밝혀질까 두려웠다. 애초의 그 걱정은 옳았다(터스키기 실험은 흑인 매독 환자들을 치료도 없이 방치한 채 그 시신을 연구용으로 사용한 사건이다).

워싱턴의 새 책 ‘의료 인종차별 : 식민시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흑인들에게 자행됐던 의료실험의 어두운 역사(Medical Apartheid : The Dark History of Medical Experimentation on Black Americans From Colonial Times to the Present)’는 40년 동안 자행됐던 터스키기 연구가 미국에서 흑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의료 연구자들에게 착취 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가 아님을 보여준다. “터스키기는 가장 잘 알려진 사례에 불과하다”고 워싱턴은 말했다. 현재 그는 드폴 법학대학원의 객원교수다.

이 책은 1855년 의사인 주인에게서 도망친 존 페드 브라운의 소름 끼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은 “피부가 어디까지 검은지” 보려고 브라운의 팔과 다리에 물집이 생기게 했다고 한다.

이런 것도 연구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치료적 의미는 전혀 없었다. 인종적 차이는 단순히 피부색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 당시 백인이 흑인의 겉모습에 얼마나 뒤틀린 호기심을 보였는지 말해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일지에 적어놓은 잔혹한 솔직함에 놀랐다”고 워싱턴은 말했다. “의사들은 인종차별적 태도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흑인을 볼 때 어떻게 느끼는지 솔직하게 썼으며 그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향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런 일지를 쓰는 자신에게 자부심마저 느꼈다.”

이 책에 제시된 사례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흑인 여성 대상의 강제 불임시술(시민운동가 파니 루 헤이머는 이를 가리켜 ‘미시시피 맹장 절제술’을 당했다고 표현했다)은 노예시대에 시작됐지만 최근까지도 음성적으로 자행됐다.

이식용 피임제 노플랜트는 지금은 폐기됐지만 1991년의 한 실험에서 볼티모어의 흑인 십대들을 대상으로 아무런 사전정보 제공 없이 시술됐다. 어떤 사람들은 “하층민을 감소시키는” 방법이라며 칭송까지 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책에서 가장 지독한 사례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뉴욕에서 실시된 한 연구일지도 모른다. 뉴욕 시당국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가진 흑인 위탁 양육 아동들에게 위험성이 있는 에이즈 약을 실험했다.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아이들은 생후 6개월 이하였다. “뉴욕시의 위탁 아동 80%가 흑인 아이들”이라고 워싱턴은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대다수 부모는 약물중독 등으로 부양 능력이 없었다. 아이들은 완벽한 피해자였다. ”

워싱턴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의료적 발전이 비윤리적 연구를 토대로 성취됐는지 그 의료적 남용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J 매리슨 스미스는 19세기의 유명한 내과의사로 미국의료협회 회장이며 여성의 건강을 강조한 1세대 의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동의하지 않는 여성 노예들을 대상으로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실험을 진행해 수많은 부인과 치료법을 발전시켰다.

이런 잔인한 역사 때문에 오늘날 많은 미국 흑인이 생명을 구해줄 가능성이 있는 의료실험에도 참여하길 꺼린다. “그동안 자행된 실험을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워싱턴은 말했다.

“우리의 건강을 대상으로 자행된 과거의 범죄들 때문에 우리는 의학계 권위자들을 믿기가 너무 두렵다. ” 미국 법률의학저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생의학 실험에 참가하는 거의 2000만 명의 미국인 중 흑인은 단 1%뿐이다.

워싱턴은 발전적 징후도 발견했다. 과거 흑인 대상의 실험을 실시한 전력이 있는 의대 다수가 워싱턴의 교과목을 개설하기로 했다. “내 희망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워싱턴은 말했다. “이런 잔학행위를 밖으로 드러내 과거의 상처를 일부 치유하고, 흑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얼마간이라도 없애고 싶다.”

ALLISON SAMUEL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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