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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전쟁 주문받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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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쟁을 팝니다

원제 Private Warriors

켄 실버스타인 지음, 정인환 옮김, 이후, 328쪽, 1만4800원

'군 조직 및 지휘 업무에 성공적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 외국군 지휘부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분, 기갑 또는 포병 병과 대령급 출신 환영'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MPRI'란 회사가 자기네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팀 리더 구함' 광고다. 이 회사는 미국의 우방국에 군경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 국방부. 정보기관들과 긴밀한 관계며 군 출신이 대부분인 이 회사 직원들은 미국의 '우방국'에 파견돼 단순한 호송. 경비 업무는 물론 마약 단속작전. 군대 훈련 등을 맡는다. 미국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민영화 보병'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쟁 만들기가 민간 기업화한 용병업체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차 원인은 198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구조조정된 군인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온 탓이다. 실제 미 육군은 83년에서 99년 사이에 80만명에서 48만명으로 줄었다. 흘러 넘치는 '군사전문가'들이 공급쪽 사정이라면 미국와 그 '우방국' 정부 측의 수요도 만만치 않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제3세계 정부들에게 이들은 구원이다. 미 정부로서도 용병업체를 이용하면 미군을 파견하지 않고도 지정학적 이득을 얻어낼 수 있다. 의회의 심의도 피할 수 있고 국제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비난에 대한 변명거리도 생긴다. 파견된 용병업체 직원이 포로가 되거나 숨지더라도 여론의 포화를 받지 않는다. 이러니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용병이 현재 4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 5년간 미 국방부가 민간 군사업체와 맺은 계약이 3000억 달러에 이른 것 역시 이해가 간다.

결국 전장에서 이익을 챙기기 위한 '핏빛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민간 전쟁광'은 이들만이 아니다. 군수업체와 무기상들도 분쟁을 반긴다.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란.북한 등 '깡패국가'의 위협을 강조하다 심드렁해지자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미 국방부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무장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일반적 위협 가능성'이란 작전개념을 창조하기도 했다. 소수 민족이나 마약 카르텔, 테러 단체의 위험도 강조한다.

이들의 농간으로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은 소련의 방공망을 침투하기 위해 대당 20억 달러란 사상 최고가의 군사장비 B-2 폭격기가 개발됐다. 군사 강국 프랑스가 906대의 탱크를 보유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1021대를 보유하게 된 것도 이들의 마케팅 때문이다.

이들은 장사만 된다면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다. 클린턴 대통령이 98년 아프리카의 정치적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자찬한 '위기대응구상'이 좋은 예다. 우간다는 당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86년부터 장기집권하며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등 야권 세력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나라였다. 그렇지만 미국의 동맹국으로 평가받아 위기대응구상을 통해 처음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

또한 이른바 군사전문가들은 군과 기업, 정부를 '회전문' 드나들듯 넘나들며 이익을 챙긴다. 체니 미 부통령이 회장을 지낸 다국적 에너지업체 핼리버튼은 2003년부터 2006년 7월까지 미 국방부로부터 16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이라크 사업계약을 따냈다고 옮긴이는 전한다.

미국에서 2000년에 출간됐으니 어지간히 묵은 책이다. 눈부시게 돌아가는 국제정치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하고, 인물 위주로 풀어간 글은 전략소설을 보듯 흥미진진하다. 나치 병사 출신으로 옛 소련과 적성국 무기를 들여다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 세력과 정권에게 공급하는 에른스트 베르너 글라트, 그리스에 잠수함을 판 뒤 이를 앙숙인 터키에 대한 무기 판촉에 이용한 바질 자하로프 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국제 분쟁의 이면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뜻깊은 책이다.

김성희 기자

사진=도서출판 이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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