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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미국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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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가위 미국 드라마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미드'라고 불리는 미국 드라마는 요즘 젊은 층에 가장 뜨거운 문화상품이다. 30편 이상이 케이블TV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사회문화적 파장도 크다. '된장녀' 파문의 원인(遠因) 중 하나가 시트콤 '섹스 앤드 시티'였다.

지금의 중장년층도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다. 1970~80년대 '600만 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초원의 집' 'V' 같은 시리즈들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 드라마가 다시 인기를 끈 것은 2000년대 와서다. '프렌즈' 'X파일'이 열기를 촉발했고 '섹스 앤드 시티' '로스트' '24' '위기의 주부들' 'CSI' '그레이 아나토미' '프리즌 브레이크' 등 빅히트작이 쏟아졌다. 의학.범죄수사.정치.미스터리.시트콤 등 장르를 망라했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장르와 치밀한 구성, 엄청난 제작비에 기초한 영화적 스펙터클이 인기 비결이다. 'TV보다 영화 같다'는 시청 소감이 쏟아졌다. 실제 미국 드라마는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제작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성장해 왔다. 할리우드가 소재난으로 부진한 최근 몇 년간 미국 드라마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 안방극장을 평정한 것이 흥미롭다. 타임지에 따르면 일부 시리즈의 판매가가 3년 새 50~70% 뛰었다.

할리우드와 미국 드라마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고전영화의 황금기 이후 새로 등장한 TV에 관객을 뺏긴 할리우드는 스펙터클 시대극으로 활로를 찾았다. '벤허'(59년)가 기점이다. 웬만한 스펙터클을 TV가 따라잡자 이번에는 엄청난 제작비와 특수효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였다. '죠스'(75년)가 효시다.

최근 미국 드라마의 막강 무기는 장르 전문화와 시즌제다. 한때 TV 드라마의 대명사였던 주부 대상 '소프 오페라'는 거의 사라졌다. 장르를 섞는 영화와 달리 장르의 심도를 파고든다. 시리즈를 여러 번 반복하는 시즌제는 인기작의 무한 복제.팽창을 보장한다. 영화 속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반응이 좋으면 7~8시즌은 기본이다.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CSI'처럼 버전 확대도 가능하다. 제리 브룩하이머, 스티븐 스필버그 등 명감독들이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창의성 고갈에 허덕이는 할리우드가 우리 영화 리메이크 판권을 찾아 기웃거린다고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미국 드라마는 곧 할리우드의 동력이 된다. 그들은 저만큼 서둘러 가고 있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