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치 중앙일보 전문대 기증/창간독자 서진규씨 정선전문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트럭 한대분 “딸 시집 보내는 기분”/다섯번 이사… 가보처럼 안고가/자료 찾는이에 보여줄때 보람/배달사고때는 보급소까지 찾아가 챙겨
중앙일보와 함께 26년­. 시골고교의 평범한 교사로 정년퇴임한 서진규씨(66·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199)는 중앙일보창간 26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65년 9월22일 중앙일보 창간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이 분신처럼 아끼며 모아온 중앙일보 26년 신문철을 후학들의 연구자료로 이용토록 하기위해 최근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 있는 정선실업전문대에 선뜻 기증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정성들여 모아온 신문이기 때문에 마치 딸자식을 시집보내는 심정처럼 아쉽고 섭섭합니다. 귀중한 자료인만큼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씨가 중앙일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순창농고(현 순창제일고) 수학교사 시절 중앙일보가 창간되자 당시 초대지국장을 맡았던 친구의 권유로 신문을 구독하면서부터.
하찮은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서씨는 마침 그해 태어난 막내아들을 돌보듯 신생신문 중앙일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내용이 다양하고 유익한 기사가 많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배달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지국에 쫓아가 꼭 챙겼어요. 44년간의 교사생활중 단한번 순창을 떠나 전북 완주에서 근무하던 시절(68∼69년)엔 집사람에게 신문모으는 일을 맡겼죠.』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하기까지 다섯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도 서씨는 부피가 크고 무거운 신문철을 가보처럼 안고 다녔다.
서씨는 매일 구독한 신문을 6개월분이 모아질 때까지 안방에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묶어 통풍이 잘되는 다락에 보관해 왔다.
신문철에 대한 서씨의 애착은 대단했다. 가족이나 이웃 주민들이 신문에 손도 못대게 할 정도로 엄격했으나 다만 자료로 참고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언제든지 신문을 꺼내 보여줬다.
『오래전 고시지망생이던 친구 아들이 사건 판례를 찾으려고 신문철과,씨름한 적이 있었어요. 그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보람을 느꼈지요.』
이렇듯 모아온 신문철은 50여뭉치로 트럭한대를 가득 채웠다.
올들어 서씨는 날로 쌓여가는 신문을 더는 혼자서 보관키 어려워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온 신문을 좀더 보람있는 일을 찾아 교수·학생·연구원 등에게 연구자료로 제공키로 결심했다.
신문철을 기증할 곳을 찾느라 한동안 고심한 끝에 올해 설립된 순창인근 곡성 정선실업전문대로 결정,지난 2일 기증식을 가졌다.
한 독자의 집념과 정성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를 기증받은 학교측은 서씨에게 감사패·기념품(금반지)을 주고 평생동안 중앙일보를 구독할 수 있도록 구독료를 내놓기로 했다.
정선실업전문대 조용기 학장(66)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발행된 중앙일보를 창간호부터 모아 기증해준 서씨의 뜻을 받들어 귀중하게 보관하며 연구자료로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한 평생을 평교사로만 재직하며 2남4녀를 모두 대학교까지 졸업시킨 서씨는 남들이 원하는 교장·교감도 마다한채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신문 모으기 외에 막걸리 한 사발이 유일한 취미라는 서씨는 『여력이 다할때까지 계속 중앙일보 모으기를 벗삼겠다』며 「영원한 중앙일보 가족」임을 자랑스러워했다.<순창=구두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