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설 자리를 잃은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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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 푸톈자동차의 최고경영자는 "5년 안에 한국 자동차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생산 대수는 이미 우리를 추월했고, 독자 엔진을 만들 정도로 기술력도 향상됐다. 싸구려 물건을 만들던 예전의 중국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이 인텔.GE 등 800여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유치해 서구의 첨단 기술을 열심히 익힌 결과다.

일본도 추격권에서 벗어나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는 지난해 경기회복에 힘입어 설비 투자를 21%나 늘렸다. 기술이 뛰어나고 노사 관계가 안정된 일본 기업이 투자까지 늘리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실제로 일본 부품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휴대전화에도 어김없이 일본 부품이 들어간다. 지난해 이에 따른 대일 무역적자가 253억 달러에 달했다.

최종 제품은 중국과 경쟁하고, 핵심 부품은 일본에 의존하면서 우리 기업의 처지가 곤궁하기 짝이 없다. 그러는 사이 경제의 기초체력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 제조업의 생산능력이 전년비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4년 만에 최저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매출 500대 기업 중 55%가 "우리 업종은 미래 유망산업이 아니다"고 답했다.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의욕도 비전도 없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분발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일본과 중국을 이겨낼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부도 4년 내내 이어진 이념.코드 정책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방의 형편이 나아지지도 않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죽도 밥도 안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기를 바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활력 있는 경제와 넘치는 일자리다. 이 정부의 '네 탓' 타령에 신물이 나고, 말꼬리를 잡는 이념 논쟁에 관심이 없다. 해마다 10%씩 성장하는 중국과 20%씩 투자를 늘리는 일본을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