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기만한 조국(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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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무 이유없이 사람죽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돈벌려고 고국을 찾았는데 죽어서 돌아가다니….』
11일 오전 9시쯤 서울 남대문로5가 무허가 하숙집 5층 골방.
지난 6일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서 타살체로 발견된 중국교포 윤일만씨(49)의 부인 최영순씨(45)는 망연한 모습으로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 부부는 한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시동생 윤평씨(30)등 일행 4명과 함께 지난 4일 선박편으로 인천을 통해 입국했다.
『중국 위해에서 보름동안 기다리다 웃돈 15만원을 주고 표를 구해 인천항에 도착했지요.』
윤씨 부부는 남대문부근 무허가 하숙집에 숙소를 마련하고 일자리를 물색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틀후 『바람쐬고 오겠다』며 하숙방을 나선 남편은 싸늘한 변시체로 발견됐다.
『한국에 갔다오면 집도 사고,TV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빚까지 내가면서 찾아왔는데…. 칠순 노모와 자식들 앞에 어떻게 남편의 유골을 안고 돌아가란 말입니까.』
가슴을 치는 최씨의 통곡에 윤씨와 함께 고국을 찾은 친구 차상홍씨(51)도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윤씨는 차씨와 함께 중국정부 산하 비행기 부품공장 선반공으로 일했다.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했으나 월급은 고작 4백원(한화 5만원).
『한국에서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더라도 한달에 최소한 50만원은 벌지 않습니까.
6개월만 일하면 돌아가서 집도 사고 자식들 결혼도 거뜬히 시킬 수 있지요.』
윤씨 일행의 귀국동기는 「돈」때문이었다.
그러나 윤씨는 일자리도 마련하기전에 길가던 불량배와 시비를 벌이다 불량배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맞아 숨졌다.
집을 사고,TV도 마련한다는 희망도 산산조각이 났다.
『여비는 바닥이 나 남편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최씨의 처절한 절규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는 듯했다.<김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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