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옐친 기자회견 유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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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 공산주의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6일 소련의 두 지도자가 미국 텔리비전앞에 나란히 앉아 진행한 회견내용은 거듭 이런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우리가 축적한 역사적인 경험은 소련에서 행해진 모델이 확실히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소련국민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는 고르바초프의 말에 이어 옐친은 『공산주의 실험이 소련에서 행해진 것은 비극이다』고 이 회견에서 또다시 공산주의의 죽음을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승리라는 정치적인 안도감과 환호를 접어두고 적어도 두가지면에서 우리앞에 가로놓인 현실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는 공산주의의 실패에 따른,소련이라는 거대체제의 해체에 따른 국제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이다. 또 하나는 종주국에서 그 실험이 비극이라고 단정한 공산주의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북한의 앞날과 이를 상대로 풀어 나가야 할 남북한관계의 장래에 관한 물음이다.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제국의 해체는 장기적으로 보아 미소를 중심으로 했던 거대한 이념적·군사적 대결의 구도를 와해시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는데 기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아직 불확실하고 불안한 요소가 많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불안요소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과도기를 틈탄 국지적인 분쟁,특히 최근 빈번히 대두되고 있는 민족주의 대두에 따른 혼란과 유혈사태에 관한 우려다. 특히 소 연방의 분열과 해체는 모처럼의 호기를 자칫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지역의 소 연방국가들이 분리 독립할 경우의 국경분쟁과 인종분규는 참담한 유혈충돌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데서 크게 우려되고 있다. 민족분규의 참상을 우리는 이미 이 지역과 인접한 유고사태에서 충분히 보고 있다.
그러한 민족분규에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인접한 여러 나라의 이해가 엇갈려 개입하게 될 경우 국제적인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세계대전이 지금 민족분규를 빚고 있는 유고에서 촉발됐던 역사적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국지적인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없도록 미소를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노력하는데 자기들만의 국익에 앞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소련 공산주의의 죽음이 긴 안목으로는 통일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북한이 이러한 역사적 추세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움츠러들기만 하는데 있다.
이념에 얽매이다가 해체되는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은 이번 사태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북한이 살고 우리겨레 모두가 사는 길은 북한이 하루빨리 미망에서 벗어나는 길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점진적 교류를 통해 자기쇄신의 기회를 잡는 것이 최선임을 북한 당국자들이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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