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한 변신 바쁘다/우크라이나 현지르포… 2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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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당원이 민족주의자 둔갑/“하루아침에 무너져 실감안난다”
우크라이나에 공산당원으로 공식등록된 사람은 약 3백만명. 그러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사흘을 머무르면서도 자칭 공산당원이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
키예프시내 키로프가에 자리잡고 있는 우쿠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당사를 찾아갔지만 건물을 지키는 군인들 몇명만 서성거릴뿐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이제 공산당원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었어요. 중앙당사가 폐쇄된 후로 당원증을 반납하려고 해도 도대체 어디로 가서 반납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우크라이나 민주언론협회 회장이면서 키예프석간지 편집국장인 비탈리 카르펜코의 설명이다.
드네프르강과 키예프중앙공원이 바라다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우쿠라이나공산당 중앙당사 앞에는 안내문 두장이 초라하게 붙어있다. 하나는 「이 건물은 앞으로 우크라이나의회(최고회의) 상임위원회 사무실로 쓴다」는 내용이고,또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의회 결정에 따라 건물이 임시 폐쇄됐으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직후인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공산당활동 정지와 중앙당사 폐쇄 및 공산당 재산압류 등을 결정했다.
또 우크라이나공산당의 쿠데타 관련,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특위를 구성했다. 이에 따라 조사특위 소속의원들과 사물을 찾으러오는 중앙당사 사무처직원들의 당사출입만 허용되고 있을뿐이다. 새로운 실업자가된 사무처직원들은 자신들이 쓰던 물건만 챙겨가지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고 있다.
조사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원은 『우크라이나공산당이 처음부터 쿠데타에 관련됐다는 증거가 포착됐다』면서,우크라이나공산당에 대한 활동금지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쿠데타가 발생하던 지난달 19일자로 우크라이나 당중앙위원회가 지방조직에 쿠데타지지 지시공문을 보낸 것으로 돼있지만 사실은 그 하루전날인 18일,우크라이나내 각 공산당조직에 이미 공문이 발송됐다는 것.
『과거 공산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돌변하고 있어요.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지요.』
우크라이나 민족운동 단체인 루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블라디미르 로마네츠(48·출판업)는 독립투사로 재빨리 변신하고 있는 과거 공산주의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공화국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당이데올로기 담당비서까지 겸임했던 크라프추크 대통령은 사실 요즈음 우크라이나 독립의 기수처럼 행세하고 있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기가 무섭게 우크라이나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고 의회를 소집,공산당 활동을 정지시킨 그는 쿠데타와 자신의 무관함을 기회있을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는 12월에 있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변신이라는게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지적이다.
지난 70여년간 우크라이나를 지배해왔던 공산체제의 완전한 붕괴에 따른 「허전함」같은게 우크라이나 사람들 사이에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배우고,또 그렇게 믿고 살아왔어요. 그것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깡그리 무너져버린다는게 도무지 실감나지 않습니다. 일종의 비애감 같은걸 느낍니다』 두아이의 어머니인 발렌티나 부인(43)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것은 잘된일』이라는 말을 잊지않았다.
『소련에서 공산주의는 완전히 끝났어요. 그 누구도 이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을 수는 없을겁니다.』
카르펜코 편집국장의 단언이다.<키예프=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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