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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보다 취업·사회보장 등이 우선" 이중 국적 시대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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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제화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이중 국적(시민권.영주권 포함)을 얻으려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허용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최근 보도했다.

IHT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는 여성이 국제결혼을 한 뒤에도 본래 국적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추세다. 또 새롭게 시민권을 받은 이민자들에게 고국의 국적도 보유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남미 17개국 가운데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는 1996년 7개국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15개국으로 늘었다. 심지어 콜롬비아.도미니카공화국.멕시코 등은 해외이주민에게 투표권까지 주고 있다. 미국 뉴욕시티대의 정치학자 스탠리 렌슨 교수는 미국인 가운데 이중 국적자가 4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IHT는 터키가 최근 이중 국적을 허용했다고 밝히며 "이에 따라 독일 거주 터키인 가운데 독일 국적을 얻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중.다중 국적자가 늘고 있는 것은 사회보장과 교육.취업 등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인 혜택이 커진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남자가 루마니아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면 그는 프랑스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루마니아가 최근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루마니아 국적자는 EU 회원국인 프랑스 등에서 별도 절차 없이도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회의 땅'이 넓어지는 것이다. 미 시카고대 사회학과의 사스키아 사센 교수는 이를 가리켜 "요즘 사람들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을 좇아 여러 국적을 취득하려 한다"고 풀이했다.

IHT는 최근 중국 임신부들이 홍콩 원정 출산을 하는 것도 이 같은 '경제적 기회'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출산하는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홍콩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영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홍콩에서 태어난 신생아 6만여 명 중 16%인 1만여 명이 중국에서 건너온 산모들이 출산한 아이다.

사센 교수는 "지금 세계 국제 노동시장은 상위층과 하위층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추세"라며 "전문기술이 있고 국적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은 많은 수입을 올릴 가능성이 크지만, 기술도 없는 이민자의 경우 법적인 문제로 계속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갈수록 '애국심'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추세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국적을 한두 개 추가로 얻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을 볼 때 요즘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소속감'보다 얼마나 잘 벌고, 잘살 수 있느냐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미 템플대 국제법 교수인 피터 스피로는 "국가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중 국적은 되돌릴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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