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시간 끌며 중유 챙기고 결국엔 경수로 요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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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는 6자회담 합의 결과를 "북한 외교의 큰 승리"라고 표현했다.

게이오대 객원교수로 일본에 체류 중인 그는 "이번 합의에는 기존 핵이나 고농축 우라늄(HEU) 등 다음 단계 조치에 대한 시한과 구체적 언급이 없어 또다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9.19 공동성명 이후 1년5개월 만에 초기 단계 조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북한 외교의 승리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렇다. 북한은 9.19 성명에서 핵 폐기를 약속했지만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약속을 어기고도 상당한 대가까지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유엔 제재와 미국의 금융 제재,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추진을 완화하고 상당 부분 해제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부시 정권은 여태까지 지켜오던 여러 원칙을 포기했다."

-합의문의 내용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런 수준이라면 몇 년 전에도 충분히 합의할 수 있었던 사안이다. 북한의 핵실험도 결과적으로 허용해 놓고, 지금에 와서 이 정도의 합의밖에 이끌어 내지 못했으니 미국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단기간은 협의가 계속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이번 합의는 모든 핵의 완전한 포기를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다. 핵 불능화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시한도 없고 명백히 의무화돼 있지도 않다. 합의문에도 토의(discuss)한다고만 돼 있다. 다음 단계에 뭘 없앨 것인지에 대한 목록 제출 의무도 없이 토의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중유 95만t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또 북한이 이미 만들어 놓았던 과거 핵이나 플루토늄 추출, 고농축 우라늄 등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다."

-다음 단계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와 폐기로 가는 다음 단계에서 경수로를 요구하고 나올 것이다. 국교 정상화와 제재 해제는 물론 경수로를 주장할 것이다. 북한은 7년가량 시간이 걸리는 경수로가 완성될 때에야 비로소 핵을 폐기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 같은 합의안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북핵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이라크 문제 등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다음 대응책을 위한 '시간 벌기'인지 모른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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