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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한자학습길라잡이] ④한자의 음을 쉽게 읽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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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楓, 晴, 沐, 較, 膳'

모두 4급수 이상의 한자라서 초보자에겐 매우 어려운 글자들이다. 차례대로 단풍 풍(楓), 갤 청(晴), 목욕할 목(沐), 비교할 교(較), 선물할 선(膳)이다. 이제 눈치 챘겠지만 모두 오른쪽의 글자, 즉 풍(風), 청(靑), 목(木), 교(交), 선(善)을 읽으면 된다. 왜 그럴까. 형성의 원리에 그 해답이 있다. 형성자를 이해하면 처음 보는 글자라도 눈치로 맞힐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자를 모르고도 읽을 수 있다=원시인들에겐 그림 문자 정도면 일상의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문화는 더욱 발달하고 새로운 말이 계속 필요해졌다. 때마다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형성자는 그런 현실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글자다. 똑똑한 인간들이 기존의 글자들을 활용하여 글자 짝짓기를 시도한 것이다. 예컨대 '듣다'는 뜻의 글자를 만든다고 하자. 듣는 기능을 하는 귀 이(耳)를 의미부로 정하고, 문(門)을 소리부로 정해 들을 문(聞)자를 만든 것이다. 곧 형성자란 둘 이상의 글자를 합하되 한쪽 부분은 뜻을, 나머지 부분은 소리를 나타낸 것이다. 이 경우 의미부가 부수자다. 형성(形聲)은 모양[形]과 소리[聲]를 합쳤다는 뜻이다.

각기 맡은 역할이 있으니 체계적이며, 이미 있는 글자를 활용하니 만들기도 쉽다. 그런데 소리를 맡은 글자는 대체로 의미의 역할도 한다. 잊을 망(忘)의 경우 없을 망(亡)이 소리부이고 마음 심(心)은 의미부다. 마음을 잃어버렸다[亡]는 의미에서 '잊다'는 뜻을 만들었으니 망(亡)은 소리 역할을 하면서 뜻의 역할까지 한 것이다. 물[水]이 푸른[靑] 것이 맑을 청(淸)이고, 여자[女]가 오래되면[古] 시어머니 고(姑)가 된다. 이때 푸를 청(靑)과 옛 고(古) 역시 소리와 뜻의 역할을 겸했다.

부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상형자라면 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형성자다. 한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전체 5만여 글자 가운데 90%가 형성자라 한다. 그러니 형성자의 원리를 잘 알면 신문이나 교과서 따위에 나오는 한자어를 읽기가 아주 쉬워진다.

◆비슷하게 읽으면 얼추 맞는다=하지만 문제를 어렵게 하는 요소가 있다. 형성자에서 음을 맡은 부분이 제소리를 내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다음 형성자를 발음해 보자.

'空, 江, 紅'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는 각기 공(工)이다. 원칙대로라면 모두 '공'으로 발음해야 하나 차례대로, 공(空), 강(江), 홍(紅)으로 발음한다. 왜 자기 발음대로 나지 않을까. 언어도 인간처럼 변덕스럽다는 사실, 한자가 본래 중국에서 들어온 글자이므로 중국 발음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다행히 얼마간의 규칙이 발견된다. 기초한자 1800자를 살펴보면 음이 바뀌더라도 대체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발음되는 경향이 있다. 자음의 경우 대체로 ㅅ.ㅈ.ㅊ 사이, 혹은 ㄱ.ㅇ.ㅎ 사이, ㅁ.ㅂ.ㅍ 사이에서 넘나든다. 예컨대 기본음이 지(至)인 형성자의 경우 실(室), 치(致)로 발음되며, 기본음이 금(今)인 경우 음(吟), 함(含) 등으로 발음한다. 발음하는 위치가 가까운 자음끼리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

ㄴ.ㄹ.ㅇ 사이, ㄷ.ㅈ 사이에서 발음되기도 하는데 앞의 경우는 두음법칙, 뒤의 경우는 구개음화 현상과 관련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립(立)과 읍(泣), 단(單)과 전(戰) 등으로 발음한다. 대표적인 형성자 무리를 표로 정리했으니 참고하여 읽어보기 바란다.

수천 개의 한자음을 일일이 다 외울 수는 없다. 기초 한자를 배운 후 형성의 원리를 적용하여 한자음을 읽으면 공부가 아주 쉬워진다. 본래 음의 언저리에서 발음되니 처음 보는 글자라도 자신감을 갖고 읽으면 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형성자를 읽어 보자. 부모가 곁에서 도와준다면 자녀가 한자를 효율적이고 즐겁게 배울 것이다.

부수자 가운데는 그 부수자의 뜻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몇 있다. 예컨대 조개 패(貝)를 부수로 하는 한자는 '조개'를 뜻하지 않고 재물 혹은 돈과 관련된다. 옛날엔 조개가 화폐를 대신해 쓰였기 때문이다. 이를 알아두어야 한자의 뜻을 짐작할 때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박수밀 한국언어문화학회 연구이사·한양대 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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