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맞는 「국민기업」/박세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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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날 세계는 「조직과 제도의 생산성」이 경쟁하는 시대다. 단순한 설비생산성이나 노동생산성이 아니라,기업이란 「조직의 생산성」,그리고 정부정책이 만드는 각종 「제도의 생상성」이 문제가 되는 시대다. 일본의 경제가 오늘날 미국의 경제를 앞서는 것은 일본 노동자들의 교육수준,혹은 기계설비의 양이 미국을 앞서서가 아니라 일본 기업의 조직생산성이 미국기업을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앞서려 한다면 한국기업의 조직생산성이 일본기업을 앞지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기업의 조직생산성의 제고는 기업이란 조직의 효율성뿐 아니라 윤리성(사회적 납득성)을 함께 높일 때,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조직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먼저 기업을 노사일체의 효율적 경영공동체로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종업원뿐 아니라,소비자인 국민 모두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즉 사회적 납득성이 높은 윤리적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도·조직의 생산성
이와 같이 효율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높일 때 나타나는 새로운 기업상이 바로 「국민기업」이다. 여기서의 국민기업이란 모든 주식소유를 국민주화해야 한다는 법률적 의미의 국민기업이 아니다. 국민감정에 받아들여지고 시대정신에 걸맞는다는 의미의 국민기업,즉 정신과 에토스(Ethos)로서의 국민기업을 의미한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나 부정적 시각일변도의 반기업문화를 이대로 두고,오늘날 우리 경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가 과연 가능할까. 부에 대한 정당성이 이렇게까지 땅에 떨어지고도 한국의 민주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기업의 효율성과 윤리성을 높여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기업주의를 정기업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기업부터 스스로 국민기업화하는데 앞장서 나가야 한다.
국민기업주의를 이땅에 세우기 위해 첫째,대규모 기업집단부터 기업을 공개하고 소유분산에 노력하고,경영의 전문화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하여 가족경영 체제와 폐쇄 경영의 타파에 솔선수범해야 하고 전문경영인의 육성에 혼신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기업의 이념과 목표도 단기이윤의 극대화에서 소비자주권의 창달과 종업원 복지의 향상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업의 정체성도 바꾸어 기업이란 몇몇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가산증식수단에 불과한 사물이 아니라 한나라의 효율적 생산과 기술혁신을 책임진 사회적 공기로서 이해돼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둘째,경영철학과 기업문화가 크게 개혁되어야 한다. 이제 기업발전의 원천은 단순히 자본의 크기에서 오지 않는다. 고도산업사회·정보화사회에서의 기업의 성패는 종업원속에 체화되어 있는 정보·지식·노동의욕·지적숙련의 양과 질,그리고 기업의 활용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보다 분권적이고 참여적인 경영문화,자본지향이 아닌 노동지향의 경영철학,그리고 보다 현장을 중시하고 생산자를 우대하며 노사간 정보공유와 의사소통의 원활화에 노력하는 경영원칙들이 필요한 시대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전종업원을 기업인화·경영자화해야 한다. 전종업원을 「기업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동시에 기업도 「종업원의 기업」이 되어야 한다.
국민기업주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선 기업의 외부경영환경도 크게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첫째,정부의 경제정책속에 신자유주의·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적 요소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환언하면 정부의 정책은 「원칙」에 기초해 이루어져야지 편의와 재량에 따라 수시로,그리고 임의로 바뀌어서는 결코 안된다.
경제정책의 최고 목표는 자유기업이 안심하고 미래를 계획하며,오로지 생산적 투자와 기술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러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데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공정경쟁질서의 확보를 위한 정부의 질서정책은 강화되어야 하지만 인·허가 등 각종의 경제규제는 대폭 축소해야 한다. 또한 관치금융과 준조세는 철폐되어야 하고 세정의 문란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셋째,국민기업주의를 위해선 정경유착을 단절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윤리성도 높아지고 기업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주지하듯이 정경유착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그 대표적 실례를 우리는 오늘날 사회주의의 몰락과 중남미 제국의 성장중단에서 익히 보고 있다.
○정경유착 단절돼야
정치권력의 독점과 경제권력의 독점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던 것이 사회주의의 일당지배였고,양자가 정치가 불완전한 형태로 유착되어 있던 것이 중남미의 천민자본주의가 아니였던가. 따라서 한마디로 경제를 정치로부터 해방시켜야 경제도 살릴 수 있고 정치도 발전시킬 수 있다.
경제는 기업이다. 한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그 나라 경제의 핵이요,성장의 견인차가 되는 기업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을 키우되 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 기업을 바르게 키우는 일,그것이 바로 한국적 기업주의,즉 국민기업주의를 이땅에 정착시키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 일의 성공여부에 우리나라 경제선진화의 장래가 달려있다.<서울대 법대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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