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 혼란 우려/세계경제에 미치는 「소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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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동결」이 금리 부추겨/독일은 인플레로 큰 타격/원유·곡물 등은 불안요인 덜할듯
고르바초프의 등장이나 실각은 둘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놓았다는데에 일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정도에 있어서는 이번 실각쪽이 훨씬 더하고,과거 고르바초프의 등장이 「기대」의 불확실성을 가져왔었다면 이번 실각은 반대로 「불안」의 불확실성을 세계 경제에 물고왔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이후의 세계경제는 ▲서방의 대소 경제제재 ▲원유·천연가스 등 소련의 자원수출 ▲곡물 등 소련의 자원수입 ▲환율·금리·자금이동 등 세계금융시장의 변화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비교적 소규모의 자금지원 중단부터 시작되고 있는 서방의 경제제재가 초기에 효과를 거두어 쉽게 풀린다면 별 영향이 없으나,서방선진7개국(G7)이 검토하고 있는 「대소경제 동결」단계까지 간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제재수단으로서 대소 식량 지원·수출의 금지는 인도적인 면에서 힘들 뿐더러 또 과거의 경험에서 나타났듯 서방국가들과 이해를 달리하는 제3세계의 농업국가들 때문에 그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또 소련의 원유수출을 막는 일은 현재 소련의 원유를 수입하는 곳이 대부분 동구국가들이므로 역시 채택되기 힘들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제재는 자금지원을 끊는 것인데,이 경우 세계자금시장이 영향을 받는다.
고르바초프 실각이전인 지난 7월초 워싱턴의 한 연구기관인 IIE는 소·동구의 경제개혁이 지속될 경우 매년 5백50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이 지역에 유입되고,그중 3백50억달러가 구동독에,1백80억달러가 동구에,20억달러가 소련에 배분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은 적이 있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본다면 대소 자금지원 중단 자체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큰 변수는 이번 사태로 서방이 구동독과 동구에 대한 자금지원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이 경우 역으로 기존 개도국들의 자금압박과 함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추가적인 금리상승요인이 생긴다.
IIE는 매년 5백50억달러의 대공산권 자금유입만으로도 국제금리는 1.76%포인트의 상승요인이 있다고 보았는데,결국 대소 자금지원 중단은 그같은 금리상승요인을 부분적으로 소멸시키기보다는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하락과 달러화 가치의 상승은 또다른 큰 변수가 된다.
지금과 같은 세계정세의 불안속에서 유럽의 기축통화격인 마르크화의 달러화에 대한 약세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기조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미국은 수출이 타격을 받고,독일은 저성장과 인플레의 불안이 가중된다.
따라서 미국은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커지나 금리를 올려가며 인플레와 싸워야 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입장과는 배치되므로 그만큼 세계경제의 갈등요인도 커진다.
이같은 국제금융시장의 사정에 비하면 원유·곡물 등 세계자원시장은 상대적으로 불안요인이 덜하다.
원유 및 천연가스시장에서 소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원유는 약 17%,천연가스는 약 37%),주된 수요처는 동구를 포함한 유럽이고 또 소련은 원유·천연가스가 가장 중요한 외화수입원이므로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이번 정정불안을 자원의 수급에 직결시키지는 않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일산 6천7백만배럴 규모인 현재의 세계원유생산량 수준에서는 얼마든지 증산의 여력이 있다.
따라서 소련의 주된 원유생산지역이 다시 민족분규 등에 휘말려 파업사태가 난다 하더라도 구조적인 불안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정작 구조적인 불안요인은 현재 최소한 41개 정유공장에 약 2백억달러를 들여 노후시설 개체를 해야만 하는 것이 소련의 절박한 사정인데,이의 해결이 서방의 자금지원 중단으로 늦춰질 수 있다는데 있다.
결국 소련의 경제는 세계경제를 큰 파탄에 몰아넣을만한 「블랙홀」은 아니다.
그러나 소련사태는 국제금융시장과 자원시장의 불확실성을 크게 높여놓았고,우리와 같이 대외의존적 체질이 강한 경제로서는 바로 이점이 걱정인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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