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인건 짐승입니다”(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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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가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습니다.』
16일 오전 11시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살인죄로 징역 5년과 치료감호를 구형받은 김부남 피고인(30·여)의 최후 진술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꽃혔다.
정상을 참작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구형했다는 검사의 논고도,김씨의 정신적 고통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법의 온정을 호소한 변호인의 웅변도 김씨의 짤막한 한마디처럼 법정에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9세때 당한 성폭행을 21년만에 직접 보복하기 위해 흉기를 들고 범인을 찾아나서 끝내 살인을 저지르고만 김씨의 범행은 실정법상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분명한 살의에 의한 번죄임에 틀림없다.
이 사회가 김씨와 같은 직접 보복에 의한 단죄」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사회 전체가 혼란속에 빠져들게 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같은 법의 테두리 때문에 김씨가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비록 성폭행이 횡행하는 세태속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모든 여성들과 관련된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하더라도 정당화 시킬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 사건에서 법만을 앞세운다면 결과적으로 그 법에 의해 보호받게 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2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빚어진 2건의 김씨 관련 사건을 법정이 동일시점에 놓고 본다면 김씨의 범행은 당연히 정당방위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9세의 항거할 수 없는 연령에 당한 일을 김씨가 30세의 나이에 당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면 그의 이같은 사고를 객관적 시차만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딸을 강간한 범인을 재판도중 증인으로 나섰던 어머니가 권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수년전 서독 법정에서 예외적으로 판정됐던 사례를 귀감삼아 우리 법정도 현명한 판례를 남길 것을 기대해 본다.<전주=현석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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