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2·9 특별사면 … 동교동계 대거 포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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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160명 대 정치인 7명'.

2.9 대통령 특별사면의 양적 분포를 보면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법무부의 설명이 실감난다. 지난해 말 전경련 등 경제5단체가 사면을 요청한 기업인 59명 중 42명이 포함됐다.

하지만 재계가 크게 만족스럽진 않은 듯하다. 경제 의지의 상징으로 집요하게 요구해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제외된 데다 사면된 대기업 인사(51명) 중 이른바 '오너'는 9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전문 경영인이다.

숫자는 적지만 정치인 사면 쪽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면 가능성이 거론돼 오던 역대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노무현 정부 특별사면의 막차를 탔기 때문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와 YS정권 시절 권영해 안기부장, 심완구 전 의원이 그들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쪽에선 서상목 전 의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측근이었던 김용채 전 의원이 해당된다.

특히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거 사면의 혜택을 받았다.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설훈 전 의원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구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적 부채를 청산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도 이런 해석을 일부 인정했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정치인을 최소화한다는 원칙 속에서도 국민 대통합이 고려된 것으로 이해해 달라"며 "과거의 공로나 연령.건강 등을 고려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선별했다"고 말했다.

'사면의 힘'이 동교동을 향한 것과 관련해 정치권은 해석이 분분하다. 한나라당 쪽에선 "대선 국면에서 여권 대통합 움직임과 맞물려 호남지역 유권자와 DJ의 지원을 얻으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구원(舊怨.오래된 한) 풀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결국 DJ에 대한 구원(救援) 요청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 전 고문과 박 전 비서실장에겐 특별 사면만 허용됐다. 복권이 되지 않았다. 이래선 대선 정국에서 정치 활동을 하기 어렵다. 박 전 실장의 측근은 "대북 송금사건 특검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노무현 정부의 또 다른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권한 남용이라는 비난 속에 과거 정치인들을 사면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이번에도 제외됐고,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 노 대통령과 가깝다는 평을 듣는 기업인들이 배제됐다. 문성근씨만이 16대 대선 선거사범 사면자 223명 속에 포함됐을 뿐이다. '측근 배제'는 특별 사면에 대해 갖는 부담을 가급적 줄이려는 노 대통령의 고심이 배어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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