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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호군 유괴사건, 영화 속 허구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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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91년 이형호군 장례식에서 영정을 든 형의 모습. [중앙포토]

이형호(당시 9세, 구정초 3년)군은 1991년 1월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44일 만에 잠실대교 부근 한강 둔치 배수로(토끼굴)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7000만원을 요구하며 이씨의 부모에게 46차례에 걸쳐 공중전화로 협박했으며, 10여 차례는 시내의 지정한 장소에 놓아둔 메모지를 부모가 찾아 지시사항을 따르게 했다. 경찰은 범인을 서울 말씨를 쓰는 낮은 음성의 30대 고졸 이상 남자로 추정했다. 16년이 지난 지금 범인은 중년이 돼 있을 거란 얘기다.

경찰은 사건 발생 뒤 1년간 9780여 명의 수사 인원을 동원했다. 전단 28만 장, 음성.비디오테이프 각 1000여 개 등도 제작해 배포했다. 신문.방송에 범인의 육성 녹음테이프와 몽타주를 내보내 시민들의 제보를 받기도 했다. 1년간 311건의 시민 제보가 이어졌지만 허사였다.

영화 '그놈 목소리'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군의 아버지를 9시 뉴스 앵커로, 어머니를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아들의 체중 관리까지 철저히 하는 주부로 설정했다. 그러나 범인의 전화 속 협박 내용과 지시사항, 범행 장소 등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공소시효 폐지 주장 힘 얻어=91년에는 1월 이형호군 유괴 사건, 3월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86년 9월~91년 4월) 등 강력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갔다. 세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최근엔 공소시효 폐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모임(전미찾모)이 지난해 10월부터 진행 중인 '반인륜적 범죄에 관한 공소시효 폐지 추진' 온라인 서명엔 4만8000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 유괴 살해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제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그러나 증거 보존의 어려움과 법 체계의 혼란을 이유로 공소시효 연장 또는 폐지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일본은 2004년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5년으로 연장했다. 독일은 30년이고 미국 연방법은 강력사건의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근영.한애란 기자

◆공소시효=사건이 일어난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 성범죄는 7년이다. 이형호군 유괴 사건과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지난해 공소시효가 만료돼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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