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리빙] 뚝배기보다 장맛 덧장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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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醬) 족보를 만들어 보세요. 후손들에게 우리 집만의 장맛을 물려주는 것, 최고의 유산이 될 겁니다."

한국농어업예술위원회의 김진흥(50.사진) 위원장의 말이다. 덧장은 간장.된장 등의 장을 새로 만들 때 그때까지 먹어왔던 묵은장을 섞어 만든 것을 말한다. 이른바 맛의 계승이다. 김 위원장은 "덧장을 만들면 묵은 장의 종균이 새 장으로 이식돼 맛과 향이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진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시민운동을 해온 김 위원장이 덧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외환위기로 시름이 깊어진 농가를 살릴 방법을 전통 장에서 찾았다. 손맛이 품질을 결정하는 '핸드 메이드(hand-made)' 제품인 장류를 예술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착안했다. 전통 가옥.의상 등의 생활유산이 모두 주목받고 있는데 전통 먹거리만 그 흐름에서 제외됐다는 자각이 계기가 됐다.

그는 전통 장의 활로를 찾기 위해 2005년 한국농어업예술위원회를 만들고, 지난해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골동식품예술전'을 열었다.

"전시회 준비 중 명문 종갓집에서 200년, 300년씩 내려오는 장을 찾았어요. 화로의 불씨를 지키는 것처럼 그 가문의 장 종균을 지켜온 거죠. 그 비법이 바로 덧장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덧장의 보급.확산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우선 올해를 '우리 집 종자 장 담그는 해'로 정하라"며 "장 담그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힘든 일은 아니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소금물을 부어 넣는 과정은 음력 섣달 보름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끝내는 것이 좋다. 그때 담근 장맛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메주는 직접 띄우고 소금은 2년 이상 묵혀 간수를 모두 뺀 상태로 사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메주는 사고, 소금은 그대로 써도 된다. 대신 메주를 넣기 전에 찹쌀을 항아리 바닥에 깔아주거나, 간장을 내려 끓인 뒤에 찰밥.보리밥 등을 넣어주면 쓴맛이 없어진다. 된장의 간을 맞출 때도 소금으로 하면 쓴맛이 나므로 묵은 간장을 이용한다.

덧장 기법은 장을 담근 뒤 4개월~1년(기간은 지역이나 집안에 따라 다르다) 정도 지나 메주를 건져내 된장을 만들고, 남은 물을 걸러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 적용된다. 가능하면 오래되고 향미가 뛰어난 묵은장을 구해 섞는다. 묵은장의 양은 많을수록 좋지만 "한 숟가락이라도 섞는 것이 아예 안 섞는 것보다 낫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덧장 기법은 된장과 간장에 주로 쓰인다. 고추장도 같은 방법으로 담글 수 있지만 묵은 고추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묵은장은 주변 사람을 통해 구하는 게 좋지만 사정이 안 될 경우 인터넷 사이트 '농어업예술품사이버전시관(www.plantopia.or.kr)'에서도 살 수 있다. 가격은 2㎏에 10만원대다. 해마다 덧장을 담그면서 어느 묵은장을 섞었는지 기록해 두면 '장 족보'가 된다. 우리집 장이 어느 집에 분양돼 갔는지도 적어 두면 재미있다.

김 위원장은 "향미가 좋은 다른 집 장, 명가나 종가의 묵은장을 자기 집 장에 넣어 우리의 뛰어난 장맛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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