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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동안 장마때문에 사용이 다소 줄어들었던 선풍기와 에어컨이 장마가 끝나자 다시 풀가동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절전운동의 일환으로 선풍기나 에어컨 대신 부채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부채는 예부터 우리 선조들이 여름 한철 가장 즐겨 썼던 생활 필수품의 하나였다. 무더위를 몰아내고 시원한 바람을 부르는가 하면,뙤약볕을 가려 얼굴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부채는 이처럼 처음에는 더위를 쫓는데 쓰였지만 점차 의례용과 장식용으로 나뉘어 쓰이기도 했다.
가령 지체높은 사람들이 계절에 관계없이 손에 들고 있는 합죽선이나,양가집 부녀자가 바깥 출입을 할때,또는 신랑·신부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드는 차면용 부채는 모두 의례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명창이 소리를 할때는 으레 갓을 쓰고 도포 입은 손에 부채를 들었고,시인묵객들이 부채에 시 한수,그림 한폭을 쓰거나 그려 넣는 것은 모두 풍류의 멋을 아는 장식용이었다.
그러나 부채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더위를 식혀주는 그 시원한 바람에 있다.
어떤 시인은 선풍기나 에어컨의 바람은 인간의 피부를 시원하게 해주지만 부채바람은 피부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시원하게 해준다고 했다.
부채가 일으켜주는 바람에는 「어진바람」(인풍)도 있고 「사랑의 바람」(정풍)도 있다. 바로 한자의 「인풍」이란 말은 부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인풍이 곧 부채가 된데는 진나라의 태수벼슬까지 한 원굉이 친구로부터 부채선물을 받고 『오로지 어진바람을 일으켜 모든 백성을 위로하리라』고 한 고사에서 연유한다.
그런 고사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선조에는 해마다 단오에는 공조에서 부채를 만들어 여러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모양과 색깔,용도와 재료에 따라 수십가지 종류에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따라서 이번 여름의 부채는 「절전선」이라고 하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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