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마녀 손길이 너무 고통스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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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풍마녀
다안 렘머르츠 더 프리스 지음, 클레멘티너 오머스 그림
유동익 옮김, 다림, 208쪽, 8500원, 초등 고학년부터

"북풍마녀의 숨은 너무나 차가워. 마녀가 마법을 걸어서 우리가 여기 누워 있는 거야."

소녀 리프카와 소년 모리는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병실에 누워있다. 리프카는 마치 온몸이 물고기 비늘로 덮인 것처럼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가려움증과 고통 못지않게 힘든 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반점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녀는 단 하나뿐이던 친구 에스메이를 제 손으로 떼어낸다.

병원에 실려오기 전까지 모리는 아파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늘 자신을 '골칫덩어리'라고 했는데, 그런 엄마를 더 골치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실을 찾아오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도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왔을 뿐이라고, 자신을 위해 애쓰는 척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서로에게 목소리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속마음을 보여준다. 리프카는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유체이탈을 할 수 있다고 모리에게 고백한다. 몸뚱이를 버려두면 마음껏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고, 가려움증이나 아픔에 시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는 손을 대지 않고도 물건을 깨뜨리거나 망가뜨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리프카에게 털어놓는다. 아빠가 집을 나가면서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던 그날도 모리는 레코드판을 절반으로 쪼개버렸단다.

아이들이 말하는 유체이탈이나 초능력이 사실인지 환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만 아픔을 해소하던 두 주인공은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용기를 얻으며 고통과 맞서 싸운다. 둘은 북풍마녀를 이겨내고 건강해져서, 마녀가 올 수 없는 따뜻한 아프리카에 함께 가자고 약속한다.

책은 독특하게 편집됐다. 한쪽은 모리를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가 담겨 있고, 반대쪽에서부터 책장을 펼치면 리프카가 1인칭 시점으로 털어놓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리의 이야기를 먼저 읽든, 리프카의 이야기를 먼저 읽든 상관없다. 그러나 어느 이야기를 먼저 읽느냐에 따라 작품을 통해 얻는 느낌은 좀 다를 것 같다. 참고로 리프카의 이야기가 조금 더 비극적이다.

차가운 키스로 아이들의 숨결을 거두어간다는 '북풍 마녀'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과 닮았다. 안데르센처럼 네덜란드 출신인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모티브가 되었음직하다. 다만 이 작품의 북풍 마녀는 비단 질병이나 죽음 뿐아니라 아이들이 지니는 여러 형태의 고통과 공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상징적이고 폭넓다. 성장기에 대면해야할 모든 종류의 성장통을 '북풍 마녀'에 대입할 수 있을 듯하다. 네덜란드 어린이 문학상인 질버런 프리펄스 상 수상작.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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