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혈육과도 손끊었다”/오빠가 말하는 송재화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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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결혼비용 6백만원 갖고 가출/「구원파」 빠져 모친장례도 안와
오대양 사채행방의 열쇠를 쥐고있는 인물로 검찰의 추적을 받고있는 송재화씨(45·여)는 14년전 가족들이 결혼자금으로 준 6백만원을 들고 가출한뒤 최근까지 가족들과 일절 연락을 끊은채 오로지 종교에만 매달려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송씨의 유일한 혈육으로 대전에 살고있는 오빠 송재영씨(54·대전시 유천동)는 23일 『동생이 과겨 14년동안 연락이 전혀없어 이제까지 가족으로 생각해온적이 없었다』며 『이제는 너무지쳐 찾고싶은 생각조차 들지않는다』고 말했다.
65년 대전 D여고를 졸업한 송씨가 구원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76년.
말이 적고 착실한 편이었던 송씨는 여고졸업후 충남도청에 근무하기도 했으나 대전 모교회를 다니던 30세때 뒤늦게 구원파교리에 심취하게 됐으며 그후 점점 가족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빠 송씨는 『집안식구가 모두 불교신자여서 동생이 교회를 다닐줄은 전혀 몰랐었다』며 『우암 송시열 선생의 후손으로 집안분위기가 엄격했기 때문에 교회에 빠져 돌아다니는 것을 아버지가 알았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 송씨의 집안은 2남1녀의 유복한 가정으로 동네에서 부자소리를 들을만큼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다.
7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송씨는 자기앞으로 모아둔 결혼비용을 달라고 졸라 오빠 송씨는 그동안 부모를 가까이서 돌봐온 동생을 생각,아버지의 통장에 남아있던 6백만원을 아버지의 백일탈상이 끝나는 날 선뜻 주었다.
송씨는 돈을 받자마자 그대로 어디론가 가출해버렸고 그뒤 한번도 가족들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밝혀진 송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무렵 서울에서 구원파신도 20여명과 함께 동양자수 등을 하며 공동생활을 시작했던때와 일치하고 있다. 송씨는 이후 어머니의 별세때는 물론,82년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둘째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을때도 가족들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송씨가 광주등지에서 사채를 끌어모으며 박순자씨 등을 만나기위해 대전을 들락거리면서도 대전에 살고있는 오빠에게 전화한번 안했다는 사실.
오빠집과 오대양 학사가 있던 자리와는 승용차로 5분거리에 불과했지만 송씨는 끝내 연락한번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동생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오빠 송씨는 동생이 그나마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최근 오대양사건이 신문지상에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부터라고 말했다.
최근 사업에 실패,셋방살이로 전전하고 있는 오빠 송씨는 『아무리 종교가 좋다지만 가족까지 멀리하며 정을 끊고 지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동생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찾지않겠다』고 밝혀 종교 때문에 갈라진 한 가족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대전=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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