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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균형 예산' 두달 만에 3조원 赤字재정 편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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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년 나라 살림살이(재정)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균형 재정을 기조로 내년 예산안을 내놓은 지 두달 만에 적자를 내더라도 예산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기대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돈을 더 써서라도 경기 회복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내년 5% 성장을 위해선 3조원 정도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먼저 내수와 투자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장기 재정의 균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소폭 적자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내년에 4~5% 성장이 가능하다면 굳이 재정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카드사 부실 및 가계부채, 노사 갈등 등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당장 편한 길로만 가려한다는 지적이다.

◇적자 재정 논란=정부는 당초 내년 성장률을 5.5%로 보고 빚(적자 국채)을 내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예산을 짰다.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 7월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다면 재정 확대 정책은 살아나는 경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생각보다 늦춰지자 정부는 슬그머니 적자 재정 카드를 들고 나왔다. 예산안을 짤 때 고려하지 않았던 이라크 파병, 시장 개방에 따른 농촌 지원 등 돈 쓸 곳이 더 생겼다는 이유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8일 내년 국내총생산(GDP)의 1.5%(약 6조원)에 해당하는 적자 재정을 편성할 것을 권고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경기회복이 너무 더딘 점을 감안할 때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며 "매년 균형예산을 짜야 한다는 데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기적 재정의 균형은 한두 해의 흑자가 아니라 국민연금 개혁 등 큰 문제를 풀어 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조세연구원 최준욱 연구3팀장은 "빠르게 회복되는 세계 경제 흐름을 감안할 때 현재 국내 경기가 재정을 확대해서까지 띄워야 할 만큼 나쁜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3조원 정도의 규모는 경기를 이상 과열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준비도 안된 사업에 이 돈이 투자되면 정부 지출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근본 처방 필요=전문가들은 균형이냐, 적자냐를 떠나 재정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적인 처방없이 재정만으로 국내 경기와 세계 경기 간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세연구원 박형수 세수재정추계팀장은 "외환위기를 전후해 성장률 추세가 낮아져 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내년 재정 정책은 경기 대응적 역할보다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의 확충과 소득 재분배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 부채.국민연금 등 재정 불안 요인이 여전하고 노령화 사회에 대한 정부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재정 확대에 앞서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공적자금에 대한 재정 부담을 감안할 경우 2001년 22.4%였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10년 2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농어촌 지원에 10년간 1백19조원을 쓰기로 약속해 장기 재정 운영의 폭이 상당히 축소된 상태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매년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게 관례화됐다"며 "경기에 따라 재정을 적절한 폭으로 조절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기조는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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