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민투표는 최후의 선택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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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북 부안 원전수거물 관리시설(방폐장)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투표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자진 철회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를 풀 차선책은 주민투표제란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연내 실시 여부를 놓고 정부와 주민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주민의 생활과 재산권 등에 영향을 미칠 대형 사업을 추진할 경우 정부는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적극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주민투표제는 잘만 운영하면 주민의 참여 의식을 제고하고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미국.스위스 등 선진국에서도 다양한 주민투표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제가 별도의 공론 과정 없이 부안 문제를 풀기 위한 카드로 불쑥 도입될 경우 그 부작용은 심각하다. 부안 사태 해결 방식은 향후 정책 추진에 선례가 된다. 요즘처럼 '님비'현상이 만연한 상황에서 쓰레기매립장이나 발전소.댐.고속도로 등 국책 사업들이 모두 주민투표에 부쳐질 경우 과연 얼마나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다. 또 이로 인한 국가의 재정적.인적 낭비와 행정력 마비는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다.

특히 부안의 경우처럼 감정이 극도로 격앙된 상태에서 바로 주민투표를 시행할 경우 자칫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적 반발로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부안 사태는 주민투표에 앞서 일단 대치 국면을 풀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등 질서를 회복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방폐장의 장단점과 해당 지역에 대한 지원 계획 등을 충분히 설득하는 노력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양측이 주민투표에 공감할 경우 못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주민투표를 하더라도 이는 최후의 카드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