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와 스승 그르니에의 문학 서신 『편지』|사제간 『열린 마음』의 대화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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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 30년 동안 오고간 열린 마음의 편지들.
『선생님, 가능하다면 제게 빛을 밝혀 주십시오…선생님에 대한 우정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것은 제 삶과 제 노력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니까요….』
『…자네가 보여 주고 있는 우정의 견고함에 난 기쁘지 않을 수 없다네. 자네의 작품을 읽으면서 점점 더 커다랗게 일어나는 나의 감탄 어린 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네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과 어우러져 왔네. 예전에는 자네가 바리세인처럼 유아독존의 독단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는데 말일세. 그렇지만 자넨 금방 젊은이다운 오만에서 벗어났고 그럼으로써 이미 진정한 위대함에 도달해 있었네….』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페스트』를 쓴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이며 『섬』 『지중해의 영감』 등 오래 기억할만한 철학적 에세이를 남긴 장·그르니에가 주고받았던 2백 35통의 편지를 모은 서간집 『편지』.
l930년 알제 중·고등학교 철학 반 담임 교사였던 32세의 장 그르니에는 제자 가운데 17세의 알베르 카뮈를 눈여겨보게 된다.
이해 말 결핵으로 휴학하게 된 카뮈를 문병하러 그르니에는 빈민가에 있던 제자의 집을 찾아간다. 이후로 그들의 서신 왕래는 60년 1월 카뮈가 교통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던 카뮈는 사회에 대해 적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지성적인 철학교사 그르니에를 만나 마음을 활짝 열고 대화를 나누면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여유를 갖게 된다.
어느 날 사제 관계로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사제간에 주먹질이 오갈 정도로 삭막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우리네 형편에선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카뮈의 편지 1백 12통을 읽다 보면 그르니에에 대한 존경심과 그의 세계관 형성 및 변화 과정, 그리고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과 맞닥뜨리게 된다.
또한 그르니에의 편지에서 우리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과 고독을 통한 삶의 긍정을 느끼게 된다.
스승 그르니에가 「포르티크 문학상」을 수상하자 제자 카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친다.
『사람들은 은근하다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강한 분으로 생각되는 이 작가는 어떤 고독에 대해서 말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그 고독을 무대에 올리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거의 모든 은혜를 받았으며 지금도 거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움을 느낄만한 사제 관계다. 스승과 제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맞잡고 존재와 세계의 질서를 밝히려 함께 길을 떠나는 것은 우리의 메마른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더 감동적이다. <도서 출판 예하 발행·4백 46쪽·6천 3백원><최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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