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야당 "유혈사태 피했다" 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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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위기 국면으로 치닫던 그루지야 사태가 20여일 만에 벨벳 혁명(무혈 혁명)으로 마무리됐다. 민중 봉기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전격 하야하고 야당이 정권을 인수했다.

◇무혈 혁명=지난 2일 총선 뒤 야기된 부정선거 시비에 강경 대응을 고집해오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23일 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주선한 미하일 사카슈빌리(국민운동당 당수) 등 야당 지도자들과 면담한 뒤 바로 사퇴했다. 대통령은 생방송 TV에서 "국가와 국민, 안정을 위해 사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직은 야당인 민주당 당수며 전 국회의장 출신인 니노 부르자나제(39.여)가 임시로 떠맡았다.

대통령의 사임에 대해 사카슈빌리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유혈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수도 트빌리시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운집해 있던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 사임 소식에 환호하며 사카슈빌리의 애칭인 "미샤"를 연호했다.

"집으로 가 회고록을 쓸 것"이라는 말을 남긴 셰바르드나제는 이후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그가 외국으로 떠났다"고 보도했으나 야당 지도자들은 "시내에 머물고 있으며,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망과 과제=야당은 정국 장악에 성공했지만 만만치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우선 정권 퇴진의 촉발제가 됐던 총선을 다시 해야 하며, '대통령 조기 사임시 45일 내 재선거'를 규정한 헌법에 따라 대선도 치러야 한다.

더구나 셰바르드나제가 근근이 눌러왔던 아자리야.압하스.남(南)오세티야 등 자치지역의 독립 움직임도 해결해야 한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야당 집권시 독립 추진"을 내세운 남서부 아자리야 자치지역은 벌써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런 움직임은 분리주의 지도자들과 불편한 관계인 야당 지도자들에게 힘겨운 과제다. 관측통들은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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