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주무르며 매달 상경/거액사채 행방과 박순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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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 교주가 직접 현찰로 금고보관/오대양 잔당 재기자금 사용설도
오대양 교주 박순자씨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수백억원의 사채와 관련된 미스터리는 세가지다.
▲박씨가 어떻게 2년의 짧은 기간동안에 그같은 거액의 사채를 끌어모을 수 있었는가 ▲그 돈은 누가 어떻게 관리했는가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갔는가 등이 그것이다.
채권자들은 박씨가 오대양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미얀코리아의 79억원 부도로 신용에 타격을 입었는데도 그후 불과 몇년사이에 그보다 몇배나 되는 돈을 쉽사리 끌어모은 것은 박씨의 독특한 수완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는 사채를 빌리기에 앞서 대상자의 재산과 가족관계 등을 먼저 파악한뒤 치밀히 계산,접근했다.
이때문에 박씨와 1∼2시간만 얘기하다보면 화술에 넘어가 호감을 갖게 된다.
박씨는 일단 친분관계가 생기면 자신이 운영하던 오대양본사와 농장 등을 견학시켜 막대한 재력을 가진 사회사업가임을 믿도록 했다.
『교사였던 아내가 오대양학사에 몇번 다녀오더니 교사직을 그만두고 오대양에서 생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퇴직금을 모두 맡긴 것은 물론,그뒤부터는 다른 돈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교주 박씨가 불러 사무실로 찾아가니 그랜저승용차를 사주며 타고다니라고 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박씨에게 사채를 주지못해 안달일 정도였죠.』
오대양에 1억여원을 투자(?)한 김모씨(58)의 말이다.
박씨는 자신이 권력층과 연결된 「큰손」임을 가장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박씨는 충남지사공관 개축공사때 수백만원이 넘는 장농·가구류세트를 선물했고 감사인사차 오대양을 방문했던 당시 A지사는 오대양의 운영실태를 보고 곧바로 새마을업체로 선정해줬다는 것이다.
새마을업체로 선정된 뒤에는 당시 새마을 본부장이던 전경환씨가 몇차례 오대양을 방문했고 박씨는 채권자들에게 자신의 배후에 전씨가 있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박씨는 86년말까지는 채권자가 원할 경우 즉시 현금으로 돈을 돌려줬고 이때문에 대전시내에는 『박교주에게 돈을 안빌려준 것은 거지와 간첩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박씨는 일단 확보된 자금은 모두 은행에 예금하지 않고 스스로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캐비닛에 현금을 차곡차곡 쌓아둔뒤 한달에 한번씩 승용차에 싣고 서울의 모처로 가지고 갔다는 것이 오대양 관련자들의 증언이다.
박씨는 특히 돈문제에 대해선만은 철저히 「비밀주의」를 고수,자신과 아들이외에는 심지어 경리조차도 수입액수가 얼마며 어떻게 지출되는지를 모르게 했다.
박씨가 숨진뒤 거액의 돈이 어디로 갔을까는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열쇠지만 아직까지 전혀 드러난바 없다.
당초에는 정치세력과의 관련 소문이 나돌면서 정치자금으로 유입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무성했으나 채권단의 자체조사결과 이는 일단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또 일부에서는 박교주의 잔여세력이 서울 등지에서 제2의 오대양을 건설하는데 사라진 사채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대전=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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